9일 새벽 폭우에 침수된 안산 국화·초화류 농장…"열흘 뒤 출하하려 했는데"

"애지중지 키우던 화분 수만 개가 물이 들어찬 비닐하우스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걸 보고도 손조차 쓸 수 없어서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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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 "비닐하우스안 화분 수만개가 물위에 둥둥"…갯벌처럼 변한 농장
지난 8일부터 사흘간 내린 집중호우로 경기 안산시 전역에서는 건물 침수, 토사유출, 농경지 침수 등 546건의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다.

안산시 상록구 팔곡이동에서 국화와 초화류 농장을 운영하는 채모(69) 씨도 호우피해를 피해 가지 못했다.

11일 찾아간 기자에게 그는 "30년 농장을 운영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난 8일 자정께 전에 없이 세찬 비에 농장이 걱정된 채씨는 서둘러 집을 나와 농장으로 향했다.

그는 1만9천800㎡의 땅에 초화(60만본)와 국화(화분 3만개)를 키우는 비닐하우스 25개 동을 운영하고 있다.

과천에서 화훼농장을 운영하다가 2014년 안산으로 이전한 그는 30년 경력의 화훼 재배 베테랑이다.

새벽에 찾아간 농장을 본 채씨는 말문이 턱 막혔다.

농장 옆 하천에서 범람한 물이 비닐하우스에 쏟아져 들어가 어른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집중호우] "비닐하우스안 화분 수만개가 물위에 둥둥"…갯벌처럼 변한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죽은 물고기처럼 화분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거센 물살이 휘몰아치는 농장 밖 도로 먼 발치에서 발만 동동거리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자 집으로 돌아간 뒤 9일 아침 날이 밝자마자 다시 농장을 찾았다.

밤사이 물이 모두 빠진 농장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어야 할 셀 수 없이 많은 화분이 밖에 널브러져 있었고, 비닐하우스 안 화분들도 흙탕물을 뒤집어써 푸른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온통 회색빛 천지였다.

흙탕물로 범벅이 된 바닥은 마치 갯벌처럼 발이 쑥쑥 빠질 정도였다.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물탱크 겉면에는 물이 찼던 흔적을 보여주듯 50㎝ 높이에 흙탕물 줄이 옆으로 길게 남아 있었다.

물탱크 옆에 있는 전기 모터는 물에 잠겨 고장이 난 상태다.

채씨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이달 20일부터 관공서와 꽃집 등으로 출하해야 할 마리골드 등 초화와 국화가 팔 수 없을 정도로 상품성이 떨어졌다.

올가을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고 말했다.

채씨는 농협손해보험에 가입됐지만,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에 대해서만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땅에 심은 작물 외 화분에 키운 국화 등은 보상받을 길이 없어 막막하다고 했다.

[집중호우] "비닐하우스안 화분 수만개가 물위에 둥둥"…갯벌처럼 변한 농장
그는 "농장 옆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그보다 1m 채 안 되는 높이 위로 수로가 있는데, 하천물이 범람하면서 수로를 거쳐 농장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면서 "수로 높이를 더 높게 하고 하천 바닥을 준설했으면 이런 피해를 보지 않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젠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아내를 애써 위로했다는 석씨는 상품성이 없게 된 초화와 국화 화분 수만 개를 치워 다시 농장을 정상화하는 게 급선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농장의 화분을 거래처로 운송하는 일을 하는 트럭 기사 10여명이 농장 침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이틀 연속 화분을 치우는 일을 도와주고 있어 큰 힘이 됐다.

또 안산시가 군부대에 요청해 내일은 군 장병들이 일손을 거들어주기로 했다.

현재 채씨와 트럭 기사들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상품성이 있는 화분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화분 등 쓰레기를 치우는데 1주일이 걸리고 다시 농장을 정비해 국화와 초화류를 키우려면 2달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채씨는 "어차피 피해가 난 거 빨리 복구하고 다시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올겨울에 심어서 내년 봄에 출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에서는 시군별로 화훼류 농가를 포함한 농업 피해 상황을 파악 중이어서 아직 공식적인 피해 현황이 집계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