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수형 희생자 대상 10차 공판서 재판부·검찰에 질문
유족회장 "재심 재판, 역사 교육의 장 되길"

"70여 년 전 일이라 관련 자료도 제대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죄로 판단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주 4·3 재심 공판 방청 여고생들…"무죄 판단 이유가 뭐죠?"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2학년 정재희 양은 9일 오전 제주지법 형사4-2부(장찬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4·3 수형 희생자에 대한 제10차 직권 재심에서 재판부를 향해 이같이 물었다.

제주지법은 고 김시형 씨 등 군사재판 수형인 30명에 대한 직권 재심 첫 공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장찬수 부장판사는 "질문에 답이 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보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만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며 "이 사건 피고인은 그 당시도, 지금도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는 만큼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과거에는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잡아다가 가혹행위로 거짓 진술을 받고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이 가진 자유와 권리를 그 어떤 부당한 방법으로도 침해할 수 없다는 이러한 대원칙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 중인 제주4·3 재심 재판이 4·3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을 하는 자리를 넘어 이처럼 제주4·3을 배우는 학습장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날 재판을 찾은 제주중앙여고 2학년 학생 6명은 평소 4·3 희생자 유족과 기자로만 채워졌던 재판장에 눈에 띄는 방청객이었다.

이들은 제주도교육청에서 4·3 재심 공판 방청 의사가 있는 학생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이다.

평소 제주4·3과 법, 인권에 관심이 있어 손을 들었다고 한다.

재판부와 검찰 측은 학생들이 재판을 방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자처했다.

재판 진행 중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단비(〃) 양은 검찰 측에 "직권 재심을 준비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두느냐?"고 질문했다.

답변에 나선 제주지검 변진환 검사는 "직권 재심은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다.

과거 군사재판처럼 졸속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며 "이에 따라 재판부에 재심을 청구할 때 빈틈없이 작성한 근거 자료를 제출, 재판부가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빠르게 선고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강혜인 양은 "오늘 재판을 방청하기 전까지는 재판 주인공은 판·검사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오늘 재판장께서 이 직권 재심 재판 주인공이 유족이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찡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 양은 "역사 쪽으로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오늘 재판 방청이 역사에 대해, 특히 4·3에 대해 사명감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김단비 양 "얼마 전 외할머니 장례식에서 우리 가족도 4·3 당시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래서 오늘 재판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앞으로 더 관심을 두고 4·3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의 질문을 지켜본 제주4·3 희생자유족회 오임종 회장은 "기특하다는 생각을 넘어 4·3에 관심을 둔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면서 "앞으로 재심 재판에 학생들이 많이 참석해 역사 교육의 장으로 발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