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개발도상국의 식량난이 가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식품 비용이 급증하며 인플레이션 부담이 증대돼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잇따를 거란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개도국 식량난 심화

1일(현지시간) 가디언은 세계은행(WB)의 식량 안보 보고서를 인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개발도상국의 식량난이 가중됐다고 보도했다. 식량 비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1%에 달하는 금액을 지출한 곳도 나타났다. 치솟은 식품 비용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유발할 거라고 내다봤다.

식량난이 극심한 곳은 레바논이었다. 올해 6월 레바논의 식품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2% 치솟았다. 2020년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사고로 곡물 운송·저장 설비가 파괴된 데 따른 여파로 풀이된다. 실질 식량 물가 상승률도 작년 대비 122%에 육박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실질 식량 물가 상승률은 각국의 물가상승률을 식량 물가 상승률에서 뺀 값이다.

짐바브웨(255%), 베네수엘라(155%), 터키(94%), 이란(86%) 등이 레바논의 뒤를 이어 높은 식량 물가 상승률을 보였다. 식량 물가 상승률이 5% 이상인 저소득 국가는 93.8%로 개발도상국 대부분이 포함됐다. 중저소득 국가(89.1%), 중고소득 국가(89.0%)도 식량난에 허덕이긴 마찬가지였다. 고소득 선진국에서도 식량 물가 상승률이 5% 이상 뛴 곳이 78%로 나타났다.

식량난으로 개발도상국 재정이 악화됐다. WB에 따르면 국가 채무가 '위험 수준'에 이른 개발도상국 가운데 식량 물가 상승으로 수입 대금이 불어나서다. 밀·옥수수·쌀 수입 비용이 GDP의 최소 1%를 넘긴 국가도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 에리트레아, 모리타니, 소말리아, 수단, 타지키스탄, 예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방글라데시는 식량난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스리랑카는 대금 지급이 불가하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WB는 “채무 부담이 큰 상황에서 치솟은 식량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다시 빚을 져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곡물 수출 재개해도 식량난 해소 불확실

지난 1일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항에서 곡물 수출이 재개됐지만, 식량난 해소가 어려울 거란 비관적인 전망이 잇따른다. 코로나19, 이상 기후 등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을 인용해 식량 위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구테흐스 총장은 최소 수 년 동안 식량 위기가 지속될 거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지난 31일 세계 대표 곡물 수출업체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와 벙기(Bunge)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주요 농작지에 불어닥친 이상기온으로 공급난을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후안 루시아노 AMD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식량난을 타개하려면 미주 대륙에서 2년 동안 연달아 대풍년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식량 위기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경기침체, 이상 기후와 코로나19로 식량 공급량이 축소됐다는 설명이다. 그렉 헤크먼 벙기 CEO는 “북미 날씨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라며 “앞으로 두 달 내로 작물 성장이 이뤄져야 수확량을 평년처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식량 위기의 피해는 고스란히 저개발 국가로 이전됐다. UN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세계 45개국에서 5000만명이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 여름까지는 기근이 심화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인구도 불어났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8억 280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에 빠졌다고 추산했다. 세계 인구의 10%에 달하는 수치다. 최근 십 수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FAO는 설명했다. 지난 15년간의 기아(飢兒) 해결 운동이 공염불이 됐다는 비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아프리카 기아 비율이 수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라서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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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이 기아 문제를 두고 책임 전가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사만다 파워 미국 국제개발청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 빈곤층과 전쟁을 벌인 셈이다”라며 지적했다. 또 그는 “미국이 세계식량기구에 39억달러를 지원하는 동안 중국은 300만달러만 기부했다”고 비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장관은 지난주 아프리카 순방에서 “식량 가격 폭등 현상은 서방국가가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구호 자금의 편향성도 문제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로 지원금 대부분이 우크라이나로 쏠렸기 때문이다. UN 금융추적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일까지 우크라이나 후원 모금률은 93%에 달했다. 후원 목표액의 대부분을 채웠다. 반면 콩고민주공화국,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 저개발국가의 모금률은 21~45%를 기록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세계가 과연 백인과 유색인종의 삶에 동등한 관심을 두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