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력·원자력 발전량 감소…어쩔 수 없이 석탄 등에 다시 의존
올여름 유럽 각지에 닥친 폭염과 가뭄으로 수력과 원자력 발전량이 줄면서 퇴출 대상인 석탄과 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되레 높아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원래 유럽에서 여름은 그리 무덥지 않아 전력 수요가 많지 않은 계절이지만,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냉방 수요가 급증해 각국이 탄소 배출량이 많은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달 영국에서는 관측 역사상 처음으로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었고, 프랑스 보르도 일대와 스페인 남부에서는 뜨겁고 건조한 날씨로 산불이 발생했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폭염으로 전력 소비가 10% 늘어났고, 프랑스에서도 낮 기온이 25도를 넘는 날이 이어지면서 선풍기와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했다.

전력 수요는 이처럼 증가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수력발전과 원자력발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유럽에서 수력발전량이 많은 나라로 꼽히는 노르웨이는 댐과 저수지의 수량이 줄어 수력발전이 예년만 못하게 됐고, 가뭄이 심각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수력발전량이 감소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강 수위가 낮아졌다.

노르웨이 에너지 정보업체 리스타드 에너지의 파비안 뢰닝엔은 WSJ에 "노르웨이에서 수력발전만 놓고 보면 최악의 해"라고 말했다.

폭염은 원자력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일부 원자력발전소는 론강(江)과 가론강 인근에 있는데, 강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원자로에 냉각수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게 돼 전기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프랑스에서는 강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수온이 상승하면 발전량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나마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되는 태양광은 발전량이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증가분이 수력발전량 감소분을 대체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퇴출 대상으로 규정한 석탄 등 화석연료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유럽은 폭염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석탄과 천연가스를 활용한 발전량을 늘리는 한편,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묘안을 짜내고 있다.

프랑스는 올가을부터 2년간 에너지 소비를 10% 감소시키기 위해 조명을 다소 어둡게 하고 난방도 줄이기로 했다.

독일도 실외 수영장이나 샤워 시설의 수온을 낮추기로 하는 등 각종 고육책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유럽의 폭염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 빈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럽환경청에 따르면 2012∼2021년 유럽의 기온 상승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높았고, 이러한 경향은 21세기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폭염은 유럽의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고, 온실가스 증가는 기온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에서 기후 문제를 연구하는 헤닝 글로이슈타인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폭염이 상당히 나쁜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