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에 들어온 기자를 맞아주는 소들. 한씨는 "소들에게 최대한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별 순간마다 울컥한다"고 말했다.
축사에 들어온 기자를 맞아주는 소들. 한씨는 "소들에게 최대한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별 순간마다 울컥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20살. 태웅군은 11년 차 베테랑 농부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소처럼 부지런히 모종을 심고, 구슬땀 흘리며 농번기를 지낸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그는 직업 만족도 200%라며 미소를 지었다. 100살까지 농사 지으며 대농(大農)으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그의 포부를 들어봤다.
▷짧게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 청년 농부 한태웅입니다. 저는 경기도 안성시에서 약 2만평 규모로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면서 한우 20두, 염소 20두, 우리나라 전통 소 ‘칡한우’ 3두를 키우고 있습니다.

▷농부라는 직업 만족하시나요.
음... 100%. 아니 200% 만족해요.

▷만족하는 이유가 뭔가요.
정년퇴직 걱정이 없어요. 기술과 노하우만 있다면 100살까지도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이에요. 누구나 CEO가 될수도 있어요. 생산, 유통, 판매를 모두 경험할 수 있고,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서 워라밸이 좋은 편이에요.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환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부분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다는 점도 장점 입니다.

▷ 언제부터 농부를 꿈꿨나요.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농부를 꿈꿨어요. 벼를 수확하는 일을 한번 접해보고는 한 번에 천직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웃음). 할아버지 영향도 많이 받았죠. 모내기하시고 흙투성이가 되신 모습이 저에겐 가장 멋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어요.
한태웅씨(19)가 축사에서 소여물을 정리하고 있다.
한태웅씨(19)가 축사에서 소여물을 정리하고 있다.
▷요즘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일이 많을 때는 오전 4시쯤 일어나요. 소랑 염소 밥을 주고 나면 이제 좀 밝아져서 논이나 밭일 하기는 딱 좋아요. 이제는 모내기가 끝나서 조금 한숨을 돌리는 시기거든요. 날도 뜨거워서 오전 11시까지 밖에 일을 못 해요. 오후에는 계속 쉬다가 해가 좀 지는 5시부터 한 8시까지 일을 하고 하루 마무리를 하죠.

▷농사는 어떻게 배웠나요.
첫 스승은 할아버지예요. 동네 어르신들께도 과외를 받았죠(하하). 농업인 모임 같은 곳에서도 배웠고요. 제 스스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예요. 200평 땅으로 벼농사 소작을 시작했죠.
한태웅씨의 옥수수 작물 뒤로 벼가 자라고 있는 모습.
한태웅씨의 옥수수 작물 뒤로 벼가 자라고 있는 모습.
▷농사짓는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랑 가족들 반응은 어떠세요.
반대가 심하셨죠. 자식이 농사짓는다면 99%는 반대하실 것 같아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정장을 입고 일하는 직업 아니니까요. 매일 흙투성이가 되고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처음엔 반대가 심하셨어요.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흔치 않을걸요? “그렇게 농사가 좋으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해봤죠. 그게 벌써 11년이 지났어요(웃음). 지금도 걱정은 하시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시고 응원해주시고 계세요.

▷젊은 사람들은 농부를 직업적으로 기피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해요. 전부 수입해서 먹고살 수는 없으니까요. 미국 농부들은 대도시 전문직 종사자들 보다 수익이 더 높아요. 게다가 지방이나 외곽으로 나갈수록 고령화 문제가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서 젊은 농부들이 더 필요하고, 이 수요가 젊은 농부들에게 기회로 찾아올 거라고 봅니다.
드론으로 내려다본 한태웅씨네 논과 축사.
드론으로 내려다본 한태웅씨네 논과 축사.
▷요즘 농사일로는 월 수익이 대략 얼마나 되나요.
정확하진 않지만 논농사 기준 1000평이면 150~200만원 정도가 1년 수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하는 소작농이 많은데 본인 땅일 경우에는 조금 더 남겠죠.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으면 임대료 같은 개념으로 돈을 내야 하나요.
땅 주인분들께 1년에 1번씩 농산물을 드리거나 돈으로 드리는데 딱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아예 안 받는 주인들도 계시고요.

▷학업이랑 농사를 병행하는 데는 무리 없으신가요.
요즘은 방학 기간이다 보니 무리는 없는데 모내기 철에는 학교에 다니면서 일해야 하는 시기라서 조금 무리가 가기는 하죠.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일해야죠(하하)
축사 외부 한켠을 가득 채운 '곤포 사일리지'. 수분 함량이 많은 보리, 목초, 생볏짚 등의 사료작물을 곤포에 밀봉한 뒤 발효시킨 것으로 생김새가 마시멜로와 비슷하여 초대형 마시멜로라는 별칭이 있다.
축사 외부 한켠을 가득 채운 '곤포 사일리지'. 수분 함량이 많은 보리, 목초, 생볏짚 등의 사료작물을 곤포에 밀봉한 뒤 발효시킨 것으로 생김새가 마시멜로와 비슷하여 초대형 마시멜로라는 별칭이 있다.
▷ 학교에서는 농업에 대해 어떤 걸 배우나요.
저는 축산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 배운 건 한우 번식과 사육 관리를 배웠어요. 앞으로는 인공 수정이나 생물학 같은 것도 배울 예정이에요.

▷농작물 판매처랑 고객은 어떻게 확보하시는지
쌀은 제가 자가로 판매하고 있고요. 일부는 이제 농협에 수매로 판매하고 있어요. 소 같은 경우는 축협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소 축산업이 수익 좋은 편인가요.
그렇지도 않아요. 요즘은 사룟값 상승으로 수입되는 곡물값이 아무래도 계속 치솟고 있다 보니 버티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는 분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송아지 한마리를 600만원 주고 데려와요. 3년정도 길러서 대략 900만원~1000만원에 판매되는데 남는 게 크진 않아요.

▷그럼 벼농사가 제일 수익성이 좋나요.
수익성이 좋다기보다는 노동력이 제일 덜 들어가죠. 보통 밭농사는 인력이 못해도 5명~10명은 투입돼야 일을 할 수 있어요. 벼농사는 농기계만 있으면 2명~3명만으로도 거뜬하죠. 저도 학교 다니면서 농사하고 있어서 최대한 인력이 덜 들어가는 농사를 주력으로 꼽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시던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무의미하게 농사만 짓는 것보다 매년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작년에는 이러한 시기에 농약과 비료를 줬는데 그해 농사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분석해보려고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농촌 풍경이 힐링 된다고 제 채널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소통을 늘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축사 내부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들.
축사 내부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들.
▷유튜브 수익은 어떻게 되나요.
정확하진 않지만 한 달에 150~200만원정도 됩니다. 저는 촬영만 하고 편집해주시는 분께 수고비로 드리면 아직은 크게 수익이 발생하진 않는 것 같아요. 유튜브 자체 수익보다는 따로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었어요. 제 손으로 키운 농산물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전부 보여드리니까 믿고 먹을 수 있는 거죠.

▷구독자가 19만명 정도 되던데 채널 운영하는 팁이 있을까요.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는 게 저만의 노하우라고 생각해요. 농작물 심고 수확하는 모습을 담백하게 담아낸 영상을 많이 찾아주시더라고요.

▷악플은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처음에는 많이 상처받았죠. 방송하면서 농사를 지니까 방송인을 하려고 농사를 짓냐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고요. 제 마음은 이게 아닌데 그런 험담을 하시니까... 그런 분들도 제가 몇 년 동안 묵묵히 농사를 하다 보면 점점 마음을 열어주시는 게 보여요.

▷악플에 상처받고 방송을 안 했을 것도 같은데 계속 진행하신 이유가 있나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농사만 지어서는 제가 이루고 싶은 거를 다 못 하거든요. 땅도 사야 하고, 소도 사야 하고, 농기계도 사야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청년 농부잖아요. 저만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거고, 방송 출연도 좋은 경험이고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에요.
관상용 닭 '은수남'
관상용 닭 '은수남'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내가 수확한 농산물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고, 또 기억해주고 다시 찾아준다는 게 정말 보람된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쌀을 판매하고 있어서 제 쌀을 드시고 “너무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지인이나 가족에 선물해야겠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때가 없어요.

▷힘든 점은 어떤 게 있나요.
예상하지 못한 자연재해가 가장 힘들죠.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결과가 좋은데 농산물값이 좋지 않을 때는 정말 속상하기도 해요. 주변에서 가축 냄새로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주로 새로 생긴 골프장에서 민원이 들어오는데 농가도 노력하겠지만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요.

▷그럼 어떻게 대처하는 편인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저가로 최대한 많이 판매해서 재고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자연재해라든지 기상 이변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빨리 날씨가 좋아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기상예보에 더 민감한 편입니다.
▷청년 농부들이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써야 할까요.
농사에는 때가 있어요. 논에 물을 대거나 비료를 주거나 수확하거나... 이런 시기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또 마냥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사회적 수요나 공급도 관심 있게 알아두면 좋죠. 최근에 기름값이 많이 올랐잖아요. 관심 있게 지켜봤으면 트랙터나 경운기에 들어가는 경유를 조금 저렴할 때 사둘 수 있으니까요.

▷농사는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세요.
힘닿는 데까지 하고 싶습니다 (웃음). 직장인이나 공무원들은 보통 60살이면 커리어가 끊기잖아요. 저는 건강하기만 하면 100살까지도 일하고 싶어요. 저희 마을에서도 80~90대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고 계시고 있고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선배로서 예비 농부들에게 조언하자면
우선 귀농하실 마을에 1~2년 정도 잠깐이라도 살아보세요.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고 경험도 쌓으시고요. 영화 ‘리틀포레스트’에 김태리 삶을 많이 꿈꾸시지만 큰코다칩니다. 장기적으로 귀농 계획을 잡으시고 실행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직업 불만족(族) 편집자주
꿈의 직장 '네카라쿠배'에서도 매년 이직자들이 쏟아집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이직을 염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大 이직 시대'입니다. [직업 불만족(族)]은 최대한 많은 직업 이야기를 다소 주관적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색 직장과 만족하는 직업도 끄집어낼 예정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직장 생활하는 그날까지 연재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인터뷰 요청·제보 바랍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