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업계 ‘빅4’가 올 상반기 280억달러 규모의 석유제품을 수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정유업계가 무역수지 개선을 비롯해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강화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상반기 수출 97.6%↑

수출 신기록 정유 빅4…"우리가 달러벌이 효자"
대한석유협회는 올해 상반기 국내 정유 4사의 석유제품 수출액이 279억5577만달러(약 36조6000억원)로 집계됐다고 26일 발표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97.6% 늘어난 것은 물론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국제 유가가 뜀박질하면서 석유제품 가격이 올라간 영향이 컸다. 올 상반기 석유제품 수출 단가는 배럴당 126.6달러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72.2달러)와 비교해 75.3% 급등했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글로벌 석유제품 수요가 올 들어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작용했다. 정유업체들은 늘어난 수요에 대응해 설비 가동률을 끌어올리면서 실적을 불렸다. 올 상반기 수출물량은 2억2090만 배럴로 작년 상반기 대비 12.8% 증가했다.

제품별로 보면 경유 수출액이 125억6200만달러로 작년 상반기보다 106.2% 늘었다. 같은 기간 휘발유와 항공유 수출은 각각 63억3300만달러, 46억8800만달러로 105.8%, 171.3% 증가했다. 나프타는 12억4200만달러로 33.6% 늘었다. 특히 항공유 수출이 급증한 것은 미국에서 수요가 늘어난 것과 맞물린다. 미국교통안전청(TSA)에 따르면 미국의 올 상반기 공항 이용객은 3억5695만 명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51.3% 증가했다.

수출국별 비중은 호주가 16.2%로 가장 크고 싱가포르(12.2%), 미국(9.3%), 필리핀(9.0%), 중국(8.6%) 순으로 집계됐다. 수출 채산성도 향상됐다. 정유업체들의 석유제품 수출 단가에서 원유 도입 단가를 뺀 제품 판매 이익은 배럴당 24.8달러였다. 작년 상반기(8.6달러)보다 16.2달러 늘었다.

무역수지·기름값 안정에 기여

통상 정유업체는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온 뒤 정제해 항공유와 휘발유, 경유,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원료인 나프타 등을 생산한다. 생산한 제품 상당량은 수출하고, 일부는 국내 항공사, 석유화학 업체 등에 판다. 직영 주유소를 통해 기름을 판매하기도 한다.

올 상반기 정유업체들의 수출액은 원유도입액(460억달러)의 61%에 달했다. 수출로 원유도입액 상당액을 회수하는 등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상반기 석유제품은 주요 수출 품목 순위에서도 반도체(690억2000만달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20년 상반기와 2021년 상반기 6위에 머무른 것과 비교하면 순위가 크게 뛰었다.

국내에 공급하는 휘발유·경유 물량 일부를 수출 물량으로 돌려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횡재세 도입 등 비판 여론에 떠밀려 정유업체들은 국내 기름값에 마진을 거의 얹지 않고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제품값을 더 높게 쳐주는 해외에 팔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유사들 내부에서 나온다. 하지만 정유업체들이 국내 경유·휘발유 공급량을 유지하면서 에너지 수급·가격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반기 수출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수요가 줄어든 데다 정제마진도 하락하는 등 하반기 상황은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