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다.
과학자들이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고 있는지 자세한 수치를 제시해도 일반인들이 그 위험의 크기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우면 에어컨을 틀어야 하고, 출근하려면 가솔린 승용차도 타야 한다.
누군가 해결하지 않으면 문명이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는 해결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사람들은 쉽게 기대곤 한다.
최근 문학수첩에서 펴낸 '빙하여 안녕'은 기후 위기를 논하는 또 한편의 책이다.
그러나 여느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 제마 위덤 영국 브리스톨대 빙하학과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만을 역설하진 않는다.
그는 빙하에 깃든 추억과 빙하의 아름다움, 그리고 빙하와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 아름다운 에세이에서 빙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요컨대 이 책은 평생 빙하를 탐구한 저자가 빙하에 바치는 한편의 러브스토리다.
저자는 8세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와의 연결통로는 끊겼다.
소녀는 그때부터 자기만의 세계에 탐닉했다.
소설에 빠져 허구의 인물들과 함께 가상의 세계에 살았다.
하지만 헛헛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케언곰산맥에서 평안함을 찾기 시작했다.
"오롯이 '나'와 '산'이 마주하는 곳, 혼돈이 가중되는 시기에 황량한 그곳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다 커다란 존재'와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
그때부터 저자는 스코틀랜드 협곡을 휩쓸고 간 거대한 얼음 강과 산을 탐험하며 얼음의 냄새를 맡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알프스산맥 빙하와 처음으로 만났다.
하지만 빙하와 마주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빙하 구혈(녹은 물로 인해 빙하에 수직으로 난 원통형 구멍)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찾아오기 일쑤였다.
최상위 포식자인 북극곰을 만났을 때는 심장이 얼어붙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연구 조사도 녹록지 않았다.
현장 탐사를 할 때는 물자보급부터 장비수송, 캠프 설치, 식사 준비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온갖 두려움과 어려움이 산재했지만, 저자는 '빙하 탐험'을 멈추지 않았다.
북극의 스발바르 제도부터 유럽의 알프스산맥, 아시아 히말라야산맥,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남극대륙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빙하를 탐험하며 그곳의 상태를 꼼꼼히 기록하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빙하와 함께 있으면 친구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빙하로 돌아갈 때면 나의 오랜 자아로 회귀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다시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유의 씨앗들이 바람에 실려 자유롭게 떠다니다가 경작하지 않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초록빛 싹을 틔우는 것처럼." 하지만 저자가 그토록 사랑하는 빙하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지금처럼 계속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21세기 중반에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5천만 년 전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지구가 너무 뜨거워서 남극대륙과 그린란드에 빙상이 형성될 수 없었던 시기 말이다.
지금부터 200년 뒤에는 4억 년 전과 같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불과 200년 뒤에 종말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빙하의 용융이 가져올 위험은 분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21세기에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과 주요 하천의 물 공급량 감소 등을 비롯해 빙하 용융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빙하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글로벌 팬데믹의 영향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선택한다면 말이다.
"
박아람 옮김. 336쪽. 1만4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