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인도의 첫 부족출신 대통령
간디와 함께 인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 초대 법무장관은 ‘불가촉천민(달리트)의 아버지’로 불린다. 달리트는 힌두교 기반의 신분제도(카스트) 내에서 브라만(사제)과 크샤트리아(귀족·무사), 바이샤(상인 등 서민), 수드라(노예) 4개 계급에 들지 못하는 최하층 천민 계급을 통칭한다. ‘닿기만 해도 부정을 타는’ 부류로 도축과 오물·시신 처리, 청소 등 사회적으로 가장 힘든 일을 담당하지만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폭행·강간 등에 노출되는 극단의 소외계층이다.

본인 역시 불가촉천민 출신인 암베드카르는 운좋게 교육받을 기회를 얻었고, 결국 자신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육과 공직 진출의 기회를 헌법에 명시하는 입법을 완성시켰다. 수혜 대상에는 카스트 밖 소수 종교인과 지방부족민도 포함됐다.

암베드카르의 이런 사회 통합 노력은 독립 후 인도를 크게 바꿔놨다. 역대 14명의 대통령 중 2명이 달리트 출신에서 나왔다. 의원내각제인 인도에서 대통령이 실권 없는 상징적 존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달리트 출신 정치인은 수십 년 전만 해도 꿈꾸기 힘든 현실이었다. 힌두교가 압도(80%)하는 나라에서 무슬림 대통령도 세 명이나 나왔다. 또 버스터미널에서 차와 빵을 팔던 소년(나렌드라 모디)이 총리가 돼서 8년째 집권하고 있고, 달리트 출신 소년(나렌드라 자다브 푸네대학 총장)이 인도 최고의 경제학자로 추앙받는 것도 그런 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난주 또 한 명의 ‘암베드카르 키즈’가 등장했다. 집권 인도국민당(BJP) 소속 드라우파디 무르무 전 자르칸드주 주지사(64)가 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 여성으로는 두 번째, 카스트제도 밖의 1000여 개 지방부족 출신으로는 첫 번째 대통령이다. 모디 총리는 “무르무의 당선이 억압받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한 줄기 희망으로 떠올랐다”고 축하했다. 인도 14억 인구 중 지배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무르무처럼 소수 부족민과 종교인들을 대표하는 정치는 이제 막 시작이라는 지적이다.

3500년 넘게 이어온 카스트 제도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법적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아직도 인도 사회 곳곳에 남아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인도를 바꿔보려는 ‘흙수저들의 반란’을 응원한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