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월명경기장서 50주년 기념식…레전드들 모두 모여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 야구 명언 탄생 '뿌듯'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7월의 무더위로 한껏 달궈진 야구장 바닥의 열기가 차츰 식어가던 16일 오후 7시.
초대 가수의 흥겨운 노래가 끝나자 고희(古稀)를 앞둔 레전드(전설)들이 하나둘씩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염색에도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이 간간이 보였지만, 여전히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들이었다.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홈런왕 김봉연, 타격왕 김준환, 스마일 피처 송상복…
1980∼90년대 한국 프로야구계를 주름잡았던 스타이기에 앞서 이들 9명은 1972년 7월 19일 저녁 열린 제26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대역전극을 펼친 레전드들이다.

이날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50주년' 기념식이 열린 전북 군산 월명경기장을 찾은 1천200여 명의 시민은 이들 한명 한명 소개될 때마다 운동장이 떠나갈 듯 환호했다.

기념식은 군산시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코로나19 등으로 암울해진 지역 분위기를 군산상고 야구부의 애칭처럼 '역전'해보자는 취지에서 준비했다.

시민 김모(77)씨는 "당시 선수들을 다시 보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감격스럽고 가슴이 뛴다"며 "신생팀으로 언감생심 우승은 꿈조차 꾸지 않았던 군산상고 야구부였기에 (역전 우승에 대한) 감동과 전율은 몇 배 더 컸다"고 회고했다.

박모(64)씨도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라는 말들이 만들어진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다"고 회고했다.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딱 50년 전이다.

당시 군산상고는 부산고에 9회 초까지 1대4로 지고 있었다.

패색이 짙었다.

버스를 타고 상경한 군산상고 학생들과 결승에 오른 모교 후배들을 위해 야구장에 운집한 졸업생들의 목이 터질 것 같던 응원 소리도 점점 모깃소리처럼 잦아들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9회 말, 선두타자 김우근이 안타를 치고 진루한 데 이어 고병석·송상복의 연속 볼넷으로 만루가 됐다.

김일권이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며 1점을 따라붙을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다.

동점은커녕 경기를 뒤집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 뒤 양기탁이 적시타를 때려 순식간에 4대4 동점을 만들었다.

2사 만루에 들어선 3번 타자 김준환.
그가 경기에 종지부를 찍는 끝내기 안타를 때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군산시민은 물론 많은 국민들에게 각본 없는 한편의 '감동 드라마'와 한국 특유의 '끈질긴 근성'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당시 우승기를 안고 이리역(현 익산역)에 내린 야구부원들은 군용 지프로 군산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치는 등 전북도 전체가 들썩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호남지역 고교 야구부가 '4대 전국대회'(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봉황기)에서 우승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그 뒤 군산상고는 1점 차 역전승을 거두는 일이 많아 자연스럽게 '역전의 명수'란 애칭을 얻었다.

그 애칭은 군산상고를 넘어 지금은 군산을 상징하는 구호로 승화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군산 수출의 20%를 담당하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등으로 지난 5년간 긴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던 군산 경제에 한 조각 햇살 같은 역할을 한 '배달의 명수'도 그중 하나다.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배달의 명수'는 국내 최대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의 수수료 인상에 반발하는 소상공인과 이에 동조하는 시민들의 이용이 급증하면서 2020년 탄생,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수수료가 없는 '배달의 명수'는 야구 명문 군산상고의 별칭 '역전의 명수'에서 따왔고, 그래서 군산 시민에게는 더 친숙하다.

시는 이날 레전드들이 참여한 야구발전 세미나를 비롯해 플리마켓, 버스킹, 체력인증센터 체험존, 야구 체험존, 역전의 명수 사진전 등 부대행사를 열었다.

1968년 창단한 군산상고 야구부는 지난 1970∼90년대 각종 전국 고교대회에서 16차례나 우승(준우승 10차례)하는 등 '야구 명문'으로 이름을 날리며 지금도 '군산의 자랑'으로 남아있다.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이날 행사에는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비롯해 각 프로야구 구단장들이 화환을 보내 축하했고, 조계연 전 기아 타이거즈 단장과 '오리 궁둥이' 김성한 선수 등 군산상고 출신 야구인들이 참석해 자리를 더 뜻깊게 했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이들 선수는 자랑스러운 군산의 문화유산이나 다름없다"며 "50년 전 벅찬 감동과 추억을 선사한 이번 행사가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지친 시민들에게 활력이 되고, 지역경제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투수이자 타자였던 김봉연(71)씨는 "프로야구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고 홈런왕도 해보고 MVP도 받아봤지만, 어찌 그날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때는 우리가 어렸잖아요"라며 "군산상고의 야구는 군산의, 나아가 전북 모두의 자랑이었고 꿈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역전타를 때린 4번 타자 김준환(69)씨는 "9회말 투아웃에다 투스트라이크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배트를 냈고, 공이 맞는 순간 안타를 직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극적으로 이겼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렇게 (우리를) 잊지 않고 불러준 군산시와 시민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인생이 굴곡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50년 만에 되살아난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전설과 감동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