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화폐·블록체인…신뢰 없으면 모두 휴지조각
화폐, 금융, 공유 경제, 블록체인의 공통점은? 정답은 모두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토대는 이런 경제 시스템과 플랫폼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벤저민 호 미국 배서칼리지 행동경제학과 교수는 《트러스트》를 통해 경제학자 관점에서 바라본 신뢰를 이야기한다. 경제학자들은 오랜 기간 사람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기 위해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는 과정을 연구해왔다. 신뢰는 합리적 선택을 위한 토대다. 기업이 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것, 노동자가 회사를 선택하는 것, 투자자가 투자 대상을 선정하는 것 등 모든 경제활동은 무엇을 신뢰할지에 대한 선택의 결과다.

저자는 인류 문명의 역사를 ‘신뢰의 확대’ 측면에서 재조명한다. 인류의 DNA에는 신뢰가 새겨져 있어 주위 사람에게 내가 믿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본능이 내재돼 있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가족이나 부족에게만 이 본능을 표현했다면, 문명의 발전을 거쳐 보다 많은 사람에게 신뢰를 증명해야 했다. 그 덕분에 종교, 시장, 법률 등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제도가 나왔다.

이 책은 현대 경제를 구성하는 제도 안에서 신뢰가 작용하는 모든 방식을 살펴본다. 예컨대 화폐는 우리가 중앙은행과 화폐 제도를 신뢰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다. 전자상거래, 공유경제, 블록체인 등 새롭게 등장한 경제 구조의 가장 큰 숙제 역시 이용자들의 불신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신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 교수는 사생활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과정에서 신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비난이 신뢰를 무너뜨리는지, 사과가 어떻게 신뢰 회복에 도움을 주는지 등을 다룬다. 신뢰 이론이 어떻게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지도 설명한다. 저자는 어떤 불확실성 속에서도 신뢰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위기 돌파의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