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한 김영호 평택보건소장…"장례 못치른 사망자들 가슴 아파"
2015년 '국내 1호' 메르스 환자 때부터 방역 최전선서 진두지휘

"돌이켜보면 35년 공직생활의 마지막은 감염병과 맞서 싸운 전쟁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
메르스·코로나19와 '7년 전쟁'…혈액암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증후군(코로나19)까지, 두 번의 팬데믹 상황에서 경기도 평택시의 방역 최전선을 지휘하다가 15일 명예퇴직한 김영호(59) 평택보건소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3월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 과정에서도 꿋꿋하게 방역 일선을 지키다가 명예롭게 공직을 마감한 그를 향해 후배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 소장은 "메르스 국내 첫 환자가 발생했던 2015년 5월 20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도 처음 겪는 일이어서 그야말로 '멘붕'이 왔죠"라며 회상했다.

평택의 한 병원에서 1번 환자가 나온 데 이어 같은 병원 입원환자 34명과 간호사 3명 등 모두 37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지역사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김 소장은 평택보건소 건강증진과장으로, 감염 환자를 이송하고 관련 자료를 취합하는 등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메르스가 종식될 때까지 4개월여간 새벽 1시 넘어 퇴근하고 새벽 6시 전에 출근하는 고된 일상이 이어졌다.

"메르스 환자는 쏟아지는데 전국에 음압 병상을 갖춘 병원은 70여 곳밖에 없어 환자를 보낼 곳이 없었죠. 한번은 하룻밤 새 14명이 추가 확진됐는데 받아 줄 병원이 없어 밤새 전화를 돌리다가 결국 경북 경주까지 이송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
2017년 의료기술직(방사선사) 출신으로는 국내 첫 지방서기관으로 승진해 보건소장에 오른 그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2020년 1월 코로나19가 국내 유입하면서 4번 환자가 평택에서 나오면서다.

이미 설 연휴 전인 24일부터 비상대책반을 가동한 평택보건소는 26일 중국 우한을 다녀온 주민이 호흡기 증상을 호소하자 검체를 채취해 검사를 의뢰한 뒤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이 주민은 다음날 전국 4번이자 평택 1번 코로나19 환자로 확진됐다.

이때 시작된 평택보건소의 비상 방역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김 소장은 환자 추이를 분석하고, 응급 환자를 이송할 곳을 찾고, 방역 대책을 강구하느라 코로나19 국내 유입 이후 최근까지 588번의 방역 회의를 주관했다.

그는 해외 입국자와 요양·보육시설 종사자 전수검사를 정부보다 빨리 시행했고, 지난해 말에는 읍·면·동별 환자 발생 추이를 자체 분석해 오미크론 변이가 미군 부대를 통해 평택으로 유입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미흡한 것도 많았겠지만 메르스라는 감염병을 한번 겪어본 입장에서 코로나에 대응하다 보니 어쩌다가 '최초'라는 여러 타이틀을 얻기도 했습니다.

정부에서 시행하기 전 선제적으로 조치했던 갖가지 방역 조치들이 대규모 확산을 조금은 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메르스·코로나19와 '7년 전쟁'…혈액암도 그를 막지는 못했다
'메르스 진원지'라는 오명 탓에 감염병에 특히나 예민하던 평택에서 방역 업무를 담당한다는 것은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체중은 74㎏에서 60㎏까지 줄었고, 몸은 늘 피곤했다.

작년 3월 병원을 찾은 그는 혈액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 후로 건장한 청년도 견디기 어렵다던 항암치료를 5차례, 방사선 치료를 30차례 견뎠다.

다행히 지금은 예후가 좋아 추적 관찰 중이라고 한다.

그는 민선 8기가 시작된 후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그간 돌보지 못한 건강도 챙기고자 6개월가량 빨리 명퇴를 결정했다.

김 소장은 "방역 최전선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사망자를 장례도 못 치르고 화장하는 것이었다"며 "고인을 보지도 못하고 한 줌 재만 받게 될 가족들, 가족들 얼굴도 못 보고 생을 마감하신 환자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그는 "비록 저는 떠나지만, 보건소 직원들은 계속해서 감염병과 싸울 것"이라며 "시민들이 보시기에 부족함이 많겠으나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따뜻한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