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걸쳐 쓴 소설 '샛별클럽연대기'·시집 '조용한 나의 인생' 동시 출간
진영논리에 갇힌 사회에 회의감…"다원화된 시대에 극한 대결 의문"
'빙벽' 고원정 15년만에 신작…"베이비붐세대 삶 복원하려 했다"
1989년 대하소설 '빙벽'(전 9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던 고원정(66)이 15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1985년 '거인의 잠'으로 등단해 '최후의 계엄령', '빙벽', '횃불' 등 정치와 역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던 그는 2007년 장편 '프레지던트 게임' 이후 침묵을 이어왔다.

"제2의 작가 인생을 시작하겠다"며 그는 소설 '샛별클럽연대기'와 시집 '조용한 나의 인생'(이상 파람북)을 나란히 펴냈다.

최근 연합뉴스와 전화로 만난 고 작가는 오랜 공백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방송과 연재 등으로 1990년대를 바쁘게 살며 제 작품에 집중할 상황이 안됐다"며 "그런 시간이 길어지며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생활이나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개인사뿐 아니라 시대 변화도 한몫했다.

정치, 역사 소설을 주로 썼던 그는 "1980~1990년대엔 민주화가 됐다고 해도 언로가 완전히 개방된 상황은 아니어서 제 작품이 그런 역할을 했는데 2000년대 이후 정치적 담론이 넘쳐났다.

작품 방향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고 했다.

소설과 시집을 동시에 출간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당초 소설은 5권으로 구상했지만 출판사들이 난색을 보였고, 3권으로 줄여 쓰다가 시행착오 끝에 한 권으로 마무리했다.

'빙벽' 고원정 15년만에 신작…"베이비붐세대 삶 복원하려 했다"
'샛별클럽연대기'는 1960~1970년대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던 시절 성장기를 보낸 인물들이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야기는 1963년부터 2019년까지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지방 소읍 한 초등학교 학예회를 통해 '샛별클럽' 일원이 된 10명의 친구는 이른바 '간첩단사건'에 휘말리고, 유신체제부터 촛불 시대를 살아내며 국가 폭력의 희생양이 되거나, 편승하거나, 저항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서사가 요즘 독자들에겐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고 작가는 "드라마나 영화 등에선 1980~1990년대가 오랜 과거인 것처럼 회상되고,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배경 얘기도 나오는데, 1960~1970년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언급하는 작품이 잘 없었다"고 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겪은 사회를 복원하고 싶었어요.

2000년대 이후 공백이 돼버린 이 시대 얘기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려 했죠. 젊은 세대에겐 역사 소설일 수도 있지만 이때도 이런 젊음이 있었다고, 부모 세대는 이렇게 살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죠."
'빙벽' 고원정 15년만에 신작…"베이비붐세대 삶 복원하려 했다"
'빙벽'이 한 청년의 죽음을 통해 군사문화로 대변된 사회의 전체주의적인 구조와 가치관을 다뤘다면, '샛별클럽연대기'는 개별 삶의 디테일한 면에 초점을 맞췄다.

고 작가는 "'빙벽'은 인물이 스토리에 얽매여 돌아가는 소설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인물의 개성과 경험에 의해 스토리가 이어지는 소설"이라며 캐릭터에 공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통의 적과 연대의식이 있던 그 시절과 비교해 지금은 다원화된 사회인데도 극한 대결을 하니 의문이 든다"며 사회가 진영 논리에 갇혀있어 어느 쪽을 대변하거나 주장하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소설에서 순정을 품고 끝까지 변함 없는 인물인 문인호를 관찰자이자 화자로 내세워 거리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예전엔 정치나 역사를 다뤄도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그냥 칼로 썰어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게 끔찍하게 생각된다"며 "지금은 고기를 익히고 조리도 해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전 작품이 낯 뜨거울 때도 있다며 "'빙벽'은 과감하게 줄이고 수정해 개정판을 내고 싶은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빙벽' 고원정 15년만에 신작…"베이비붐세대 삶 복원하려 했다"
소설에 '조용한 우리들의 인생 1963~2019'란 부제를 붙였는데, 시집은 '조용한 나의 인생'을 표제시로 내세웠다.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로 옮아간다.

1992년 문학소년 시절 습작을 모은 시집 '그대 안에서 깊어지는 나'를 낸 적은 있지만 이번이 사실상 첫 시집이라고 한다.

7년간 '산책처럼 여행처럼/ 먼 유배지라도 가듯 꾸역꾸역'('지구산책자의 나날' 중) 걸으며 시를 썼다고 했다.

이렇게 산과 들을 걸은 거리는 3만7천㎞쯤 된다.

"문학적인 욕심보다 제 일상에서 나온 시이자 일상을 견디기 위해 쓴 시들이죠. 문인호가 살아온 인생이나, 지금 은퇴한 세대의 삶과 맞닿아 있어요.

"
'하루 또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마다 그 길이라도/ 세상의 등 뒤로 난 길이라도/ 혼자라도/ 바람을 따라 걸으면/ 더 쓸쓸해 보일지도 모른다'('조용한 나의 인생' 중)
시집의 추천사를 쓴 대학 5년 선배 정호승 시인은 그에게 "재능이 있으면 다 쓰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다음 작품을 쓰고 있다는 고 작가는 "한가지 결심한 것은 책이 나왔을 때 다음 작품에 들어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제 할 일이 그것밖에 없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