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도입되는 상병수당…시작도 전에 "제대로 해야"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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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쉴 권리' 보장 첫 시도 '의미'…내일부터 시범사업
OECD 회원국 중 미국과 한국만 없어…'아파도 일하는 문화' 심각
"대기기간 길고 보장 수준 낮아" 비판…"본격도입, 2025년보다 앞당겨야"
수당을 통해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는 상병수당(부상·질병 수당) 제도가 시범사업으로 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된다.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규정하고 이와 관련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시작도 전부터 설계가 잘못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보장 수준이 지나치게 낮은데다 수당을 받는 기간에서 제외되는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3~14일 지난 뒤부터 하루 4만3천960원…"제대로 도입해야"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은 서울 종로, 경기 부천 등 6개 시군구에서 3년간 실시된다.
질병과 부상으로 인해 일을 못 하는 근로자는 기준 최저임금의 60%(4만3천960원)를 상병수당으로 받는다.
3가지 모델로 나뉘는데, 모델에 따라 대기기간은 3일, 7일, 14일이며 최대보장기간은 90일, 120일이다.
상병수당 도입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한참 뒤처져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병수당이 도입되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다.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182개 회원국 중 163개국이 이미 도입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50조(부가급여)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이며 시행령에 관련 내용도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9년에는 '의료 및 상병수당에 관한 조약'을 통해 상병수당으로 근로능력 상실 전 소득의 60% 이상을 지급하도록 권고했는데,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음에도 상병수당은 도입하지 않았다.
상병수당 제도가 뒤늦게라도 도입되지만, 복지·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제대로 된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액수 적고 대기 길어 '반쪽짜리'…2025년에야 본격도입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무상의료운동본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도입하려는 상병수당 제도는 대기기간이 최대 14일로 지나치게 길고 보장 수준은 최저임금의 60% 수준으로 낮아서 반쪽짜리"라고 비판했다.
대기기간은 휴무 시작일부터 상병수당 지급 개시일까지의 기간으로, 이 기간이 지나야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휴직 전에 상병수당을 지급받는 등 악용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대기기간을 설정했다고 설명하지만 수당을 받는 근로자는 그만큼 수당으로 소득 보전을 받지 못한다.
상병수당 도입 추진의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쉬지 못 하는 근로자들의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정작 상병수당을 받기는 힘들다.
시범사업 모델 중 대기기간이 7일 혹은 14일인 경우에서는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 코로나19의 격리기간(7일)이 지난 뒤다.
보장 수준 역시 최저임금의 60%라서 ILO가 권고하는 근로능력 상실 전 소득의 60%에는 한참 못 미친다.
쉬면서 치료를 받을 동력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희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 간사는 "시범사업 수준으로는 소득이 충분히 보전되지 않는 데다 대기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유급병가를 사용할 수 없는 취약노동자들에게는 제도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 아파도 못 쉬는 문화 '심각'…유급 휴가 의무화 필요 주장도
정부는 시범사업 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25년에야 상병수당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인데 이미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참 늦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느긋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병수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제도이긴 하지만,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보사연)의 지난 2020년 9월 '우리나라의 병가제도 및 프리젠티즘 현황과 상병수당 도입 논의에 주는 시사점'(김수진·김기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근로자들이 아플 때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높다.
'아파도 출근한 사람의 비율'(23.5%)은 '아파서 쉰 비율'(9.9%)의 2.37배로, 유럽국가들 평균인 0.81배보다 크게 높았다.
이런 비율은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일용직, 용역업체 근로자,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 근로자, 저임금 근로자에게서 특히 높았다.
상병수당 제도가 실효성을 갖고 아프면 맘 편히 쉴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유급휴가를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해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사연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493개 민간기업(상시 10인 이상 근로자 고용 사업장)의 취업규칙 자료를 분석한 결과 취업규칙에 병가제도가 있는 곳은 42% 수준이었고, 유급으로 병가를 제공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했다.
/연합뉴스
OECD 회원국 중 미국과 한국만 없어…'아파도 일하는 문화' 심각
"대기기간 길고 보장 수준 낮아" 비판…"본격도입, 2025년보다 앞당겨야"
수당을 통해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는 상병수당(부상·질병 수당) 제도가 시범사업으로 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된다.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규정하고 이와 관련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시작도 전부터 설계가 잘못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보장 수준이 지나치게 낮은데다 수당을 받는 기간에서 제외되는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3~14일 지난 뒤부터 하루 4만3천960원…"제대로 도입해야"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은 서울 종로, 경기 부천 등 6개 시군구에서 3년간 실시된다.
질병과 부상으로 인해 일을 못 하는 근로자는 기준 최저임금의 60%(4만3천960원)를 상병수당으로 받는다.
3가지 모델로 나뉘는데, 모델에 따라 대기기간은 3일, 7일, 14일이며 최대보장기간은 90일, 120일이다.
상병수당 도입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한참 뒤처져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병수당이 도입되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다.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182개 회원국 중 163개국이 이미 도입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50조(부가급여)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상병수당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의무가 아닌 임의 규정이며 시행령에 관련 내용도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69년에는 '의료 및 상병수당에 관한 조약'을 통해 상병수당으로 근로능력 상실 전 소득의 60% 이상을 지급하도록 권고했는데,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했음에도 상병수당은 도입하지 않았다.
상병수당 제도가 뒤늦게라도 도입되지만, 복지·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제대로 된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액수 적고 대기 길어 '반쪽짜리'…2025년에야 본격도입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와 무상의료운동본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도입하려는 상병수당 제도는 대기기간이 최대 14일로 지나치게 길고 보장 수준은 최저임금의 60% 수준으로 낮아서 반쪽짜리"라고 비판했다.
대기기간은 휴무 시작일부터 상병수당 지급 개시일까지의 기간으로, 이 기간이 지나야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휴직 전에 상병수당을 지급받는 등 악용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대기기간을 설정했다고 설명하지만 수당을 받는 근로자는 그만큼 수당으로 소득 보전을 받지 못한다.
상병수당 도입 추진의 계기가 된 것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쉬지 못 하는 근로자들의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정작 상병수당을 받기는 힘들다.
시범사업 모델 중 대기기간이 7일 혹은 14일인 경우에서는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이 코로나19의 격리기간(7일)이 지난 뒤다.
보장 수준 역시 최저임금의 60%라서 ILO가 권고하는 근로능력 상실 전 소득의 60%에는 한참 못 미친다.
쉬면서 치료를 받을 동력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희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 간사는 "시범사업 수준으로는 소득이 충분히 보전되지 않는 데다 대기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유급병가를 사용할 수 없는 취약노동자들에게는 제도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 아파도 못 쉬는 문화 '심각'…유급 휴가 의무화 필요 주장도
정부는 시범사업 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25년에야 상병수당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인데 이미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참 늦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느긋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병수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제도이긴 하지만, '상병수당의 조속한 도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보사연)의 지난 2020년 9월 '우리나라의 병가제도 및 프리젠티즘 현황과 상병수당 도입 논의에 주는 시사점'(김수진·김기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근로자들이 아플 때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높다.
'아파도 출근한 사람의 비율'(23.5%)은 '아파서 쉰 비율'(9.9%)의 2.37배로, 유럽국가들 평균인 0.81배보다 크게 높았다.
이런 비율은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일용직, 용역업체 근로자,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 근로자, 저임금 근로자에게서 특히 높았다.
상병수당 제도가 실효성을 갖고 아프면 맘 편히 쉴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유급휴가를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해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사연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493개 민간기업(상시 10인 이상 근로자 고용 사업장)의 취업규칙 자료를 분석한 결과 취업규칙에 병가제도가 있는 곳은 42% 수준이었고, 유급으로 병가를 제공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