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모리스, 철수 발표 이후 3개월째 매각 작업 답보 상태
자산 국유화 우려에 직원 체포 위협까지 '첩첩산중'
"러 시장, 발빼기조차 쉽지 않네" 속타는 글로벌기업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서는 글로벌 회사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성공적으로 철수한 기업도 있지만, 일부는 러시아 시장에서 발을 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대표적인 사례로 담배 회사인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을 꼽았다.

필립모리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3월에 러시아 시장 철수를 결정했지만 3개월이 흐른 지금도 매각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 사업부 매각 절차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매각 승인을 받아야 하는지, 또 승인을 받으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고 최고경영자(CEO)인 제이섹 올자크는 토로했다.

올자크 CEO는 "정말 지독하게 복잡한 일"이라며 "어마어마할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거나 러시아 사업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서구 기업은 수백 개에 달한다.

애플과 같이 러시아에 공장이 없는 기업은 단순히 판매를 중단하면 그만이다.

사실 많은 기업에 러시아는 중요한 시장이 아니다.

모건스탠리 분석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주요 기업 1천개사의 수익 중 러시아 비중은 1%도 채 안 된다.

하지만 필립모리스는 다르다.

1977년 구소련에 진출한 필립모리스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이 있고, 러시아 전역의 약 100개 도시에 영업소를 두고 있다.

직원만 3천200명에 달한다.

지난해 필립모리스 총 출하량의 약 10%가 러시아에서 팔렸고, 순이익의 6% 가량을 러시아에서 벌어들였다.

구소련에선 '빨간 말보로' 한 상자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필립모리스 담배가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러시아는 필립모리스에 중요한 시장이다.

3월 말 기준으로 자산 가치가 약 14억달러(약 1조8천130억원)에 달하는 러시아 사업부를 매각하겠다는 필립모리스의 결정을 러시아가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러 시장, 발빼기조차 쉽지 않네" 속타는 글로벌기업
현재 러시아는 외국 기업이 러시아 내에서 생산을 줄이거나 일정 수의 직원을 해고할 경우 자산을 국유화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현지 일자리와 공급망을 보호한다는 명목이다.

러시아는 또한 기업들이 배당을 본국으로 송환하고, 기계와 같은 자산을 적대적인 국가에 수출하는 것도 금지했다.

러시아 검찰과 근로감독관은 외국 기업이 러시아 시장 철수나 조업 축소를 발표하자마자 들이닥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이러한 방문과 경고장, 소환장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현지 기업 대표들을 체포하겠다는 협박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산이 러시아 정부에 압류되지 않게 하고, 직원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매각 절차를 밟으려니 시간이 무한정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사도 러시아 자산과 사업부를 매각하기로 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소렌 스쿠 CEO는 3월 중순 주주총회에서 "실제로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사업을 중단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버드와이저를 판매하는 세계 최대 맥주 업체 안호이저부시 인베브는 러시아 시장에서 손을 떼기로 하고 터키 주류업체 아나돌루 에페스와 합자 투자한 러시아 사업을 정리키로 했지만 4월 말 시작된 양측의 협상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를 받는 상대에게는 러시아 현지 사업부를 매각할 수 없어 제값 받기도 쉽지 않다고 WSJ은 지적했다.

올자크 CEO는 "우리 회사는 현지 직원들에게 계속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며 "또한 시장 철수를 러시아 현지 경영진이 아닌 스위스에 있는 회사 지도부가 결정했다는 점을 러시아 당국에 분명하게 알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각을 놓고 이어진 러시아 당국과의 소통에 대해 "직접 한번 노력해보라"며 "당신은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