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교수 신간 '인류 본사'…동/서양 이분법 뛰어넘어 인류사 통찰

오늘날 '역사'를 얘기하노라면 자연스레 '서양사(西洋史)'와 '동양사(東洋史)'를 떠올린다.

'서양사'는 그리스-로마에서 출발해 중세-대항해시대-르네상스-종교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문명으로 귀결되며 '세계사(世界史)'라는 이름을 독점했다.

동서양의 균형을 내세우며 인위적으로 육성된 동양사는 중국사가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나머지 세상은 그저 지역사, 변방사, 비주류 역사로 치부됐다.

서양사와 동양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엄격히 분리된 채 이어져 오다가 근대에 이르러 '서양이 동양을 개화시키며 융합됐다'는 식으로 언급되곤 했다.

이런 역사 인식은 과연 타당한가? 서양사와 동양사에 비견되는 '중양사(中洋史)'는 무시해도 무방한 걸까?
1988년 터키의 국립이스탄불대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희수 교수는 이런 인식이 매우 잘못된 역사 인식의 소산이라며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서양의 문명과 문물은 결코 서양에서 기원하지 않았고, 동서양은 인류사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교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양과 동양을 촘촘히 이어준 '중간문명'이,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문명'을 탄생시킨 '중심문명'이 분명히 존재해왔다고 역설한다.

틀에 박힌 동/서양 이분법에 의해 외면됐을 뿐 문명의 본향은 바로 '오리엔트-중동'이었다는 얘기다.

신간 '인류 본사'는 오리엔트-중동 지역을 바탕으로 인류사를 새롭게 썼다.

'본사(本史)'라는 용어가 함축하는 바처럼 잃어버린 역사의 중심, 즉 제자리를 되찾게 하고자 한다.

서양사가 독점한 역사…"문명의 뿌리는 오리엔트-중동"
이 교수에 따르면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 터키공화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아시킨 역사의 본토였다.

중동(中東)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기반으로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류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인 문물들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리엔트-중동은 인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만2천 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였고, 6천400㎞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

따라서 저자는 오리엔트-중동을 모른 채 문명사를 논하는 것은 곧 문명 없이 문명사를 외치는 아이러니와 같다며, '중양(中洋)'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동/서양 이분법이 유발한 역사 왜곡과 인식 단절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인류문명의 뿌리를 되찾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책은 초고대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히타이트·프리기아 등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7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들의 역사를 거쳐 근대 오스만·무굴 제국의 성쇠까지 오리엔트-중동의 인류사적 궤적을 면밀히 추적해간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인류사회의 시원을 개창하고 동시에 '중간문명'으로서 동/서양의 교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오리엔트-중동 지역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했다.

그러면서 책 제목이 시사해주듯이 "인류문명의 모태에서 출발해서 인류역사의 본류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인류 본사'"라고 말한다.

책은 '아나톨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 1만 년의 역사', '인류 대번영을 이끈 이슬람 문명의 역사' 등 2부 15장으로 구성됐다.

중동 역사와 이슬람 문화의 국내 최고 전문가인 저자는 지난 40년 동안 터키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이란,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현장 연구를 해왔으며 이슬람협력기구(OIC) 산하 이슬람역사문화연구소(IRCICA) 연구원, 한국중동학회장 겸 한국이슬람학회장 등을 지냈다.

지금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등으로 일하고 있다.

휴머니스트. 704쪽. 3만9천원.
서양사가 독점한 역사…"문명의 뿌리는 오리엔트-중동"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