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성범죄 문제에 대한 공감서 출발…피해자다움 벗어난 인물 표현하려"
"남녀 상관없이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 될 수 있다는 거 보여주는 영화"
'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여성들의 포용과 이해 그리고 싶었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해하면서 혐오가 아닌 포용과 이해로 나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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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 '경아의 딸'은 가부장제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엄마 경아(김정영 분)가 교사인 딸 연수(하윤경)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경아와 연수 외에도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 그리고 연대자로 역할 한다.

14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개인적인 공감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말했다.

"이 영화를 처음 시작한 게 2018년 즈음인데 그때 워낙 사이버 성폭력 이슈가 컸고, 저도 일상의 공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분들이 겪는 가장 큰 두려움이 결국에는 순결하지 못하다는 사회적 낙인이잖아요.

제가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서 그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아 그분들이 겪었던 고통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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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여성들의 포용과 이해 그리고 싶었죠"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인 연수는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하며 촬영이 되고 있다는 걸 알고서도 막지 않았다.

동영상 유출 피해를 입고 일상이 마비된 순간에도 휴대전화로 예능 동영상을 보며 낄낄대기도 한다.

연수와 같이 입체적으로 그려진 영화 속 인물들은 전형성을 벗어남으로써 현실감을 더한다.

김 감독은 "흔히 생각하는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니 인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면서 본인이 피해를 보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했을지 상상하며 쓰면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라는 활동가들의 조언에 따라 연수를 그려냈다고 설명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상황인데 웃을 수가 있어?'라고 하시고 어떤 분들은 '너무 연수가 방에 갇혀있는 것 아니야?'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게 너무 달라서 조율하며 (인물을) 그리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결국에는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지만 살아 보려 하는 순간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고 공존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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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여성들의 포용과 이해 그리고 싶었죠"
영화는 경아가 사별한 남편에 얽매여 살던 집을 떠나고, 연수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학교에 면접을 보러 걸어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틀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온전히 봉합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희망적이다.

김 감독은 "(인물들이) 어디까지 나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영화를 끝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모녀관계가 완전히 화해를 이루지는 못했고, 연수가 받는 피해는 계속 반복돼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많지만 관객분들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서로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비로소 각자의 인생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에 드는 결말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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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여성들의 포용과 이해 그리고 싶었죠"
'경아의 딸'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두 개의 상을 받은 데 이어 제27회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 감독은 "디지털 성범죄라는 이야기를 모녀 이야기로 풀어내서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관객들이 개인의 이야기로 끌어들여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남성들이 봐야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성은 피해자이고 남성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안에 어떤 구시대적인 가치관이 남아있으면 누구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음 세대에는 폭력과 혐오 대신 포용력과 이해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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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