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3천억대 사상 최대 부동산 사기사건.

언론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E사는 강원도 횡성, 제주도 서귀포, 경북 울진 등 일대 10곳에서 개발이 어려워 값이 싼 토지를 사들인 후 1999년부터 올해까지 테마파크 개발사업을 명목으로 투자자 총 7천여명으로부터 유치한 자금은 총 3천여억원.

3천여억원 가운데 1천억원을 투자유치한 직원에 대한 수수료와 영업비용 등으로, 나머지 1천억원은 경영진 개인용도와 관계사 대여금 등으로 유용했으며, 부지구입비 등 사업비로 사용된 자금은 1천억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사업지 10곳 중 9곳은 인ㆍ허가절차도 받지 않는 등 대부분 개발사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으며, 착공된 한 곳도 공사가 2년 이상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부동산 전문 컨설팅 업체 및 디벨로퍼로서의 E사와 그 대표 명성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사건에 의한 충격은 더 없이 컸다.

기억하건대 필자도 수년전 강남구 대치동에 소재한 서울무역전시장(SETEC) 부동산박람회장에서 사기사건에 거론된 업체가 주관하는 부스에서 명함을 주고 전원주택 분양자료를 받아왔던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당시 분양자료에 언급된 곳이 바로 문제의 소지가 됐던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소재한 전원주택 부지였다.

박람회장을 나오고 난 후 며칠 후부터 한동안 전화에 시달렸다. E사의 영업사원(중년 여성이었음)에게서 전원주택에 투자할 의사가 없느냐는 전화가 그치질 않았다. 명함을 주고 온 것도 그랬지만 매몰차게 응대하지 못하고 처음에 약간 관심 있는 듯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한 것이 빌미가 된 셈이었다.

조금이라도 틈만 보일라치면 여지없이 파고든다. 좋은 땅이 있으니 투자하라고, 횡성 둔내면의 전원주택(지)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 투자처를 소개해주겠다고... 귀찮다싶을 정도로 참 끈질기게 전화를 해댔다. 필자가 역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 좀 팔아달라고 하고 나서야 그 영업직원의 전화가 끊겼다.

그 후에도 다른 기획부동산으로부터 가끔 전화가 오지만 무작정 냉대하거나 전화를 끊지는 않는다. 어느 지역 어떤 물건을 얘기하는지, 얼마에 매각하는지, 어떤 조건으로 매각하는 지 등을 세세하게 묻거나 듣는다. 마치 그런 대화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그런데 전화 내용을 유심히 듣다보면 한두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반드시 주변지역 또는 당해 토지의 개발호재, 이를테면 도로 개통, 레저타운 개발, 펜션, 전원주택, 도시계획 수립, 동계올림픽 유치, 엑스포(국제박람회) 유치 등을 거론하는 것이 그 첫째요, 땅을 소개하더라도 수도권 가까이 있는 누구나 알만한 그런 땅이 아니라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를 그런 땅을 소개한다는 것이 그 둘째다.

첫째의 경우 해당 토지를 포함하여 주변지역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둘째의 경우 투자자들이 쉬이 찾아갈 수 없게 만들거나 단체로 현장방문을 하더라도 해당 토지가 아닌 보기 좋은(?) 다른 땅을 보여줘도 잘 알아볼 수 없겠기 때문이리라.

어떤 종목의 투자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땅이 투자대상이거나 투자권유를 받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장을 답사해보는 일이다. 현장답사를 통해 주변 현황이나 시세, 토지의 지형ㆍ지세, 접도조건 등을 알아보고 컨설팅업체가 제시하는 개발호재가 맞는지, 해당 토지에 대한 개발이 가능한지 등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기획부동산의 영업소에 방문하는 경우 잘 갖춰진 사무실 인테리어나 규모, 매각토지에 대한 개발계획도 및 조감도 등에 현혹되기 쉽다. 누가 와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그럴 듯하게 꾸며놨기 때문이다.

영업사원의 말이나 보여지는 개발관련 도면에 의존하기 보다는 해당 토지 주변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나 관할 시ㆍ군ㆍ구청 담당자 인터뷰를 통해 개발호재에 대한 진실성이나 도시계획사항 등을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투자권유 시 들은 개발사업이 실제 인ㆍ허가를 받았는지 또는 어느 정도 추진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각종 지적공부를 발급받아보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공법상의 규제사항이 있고, 어떤 용도로 개발이 가능한지를 알아볼 수 있는 토지이용계획확인서, 해당 토지에 대한 권리변동사항을 알아볼 수 있는 토지등기부등본, 토지 경계 및 측량의 기본이 되는 지적도(임야도), 토지의 소재지ㆍ지번ㆍ지목ㆍ지적 및 소유자의 주소ㆍ성명 등 토지에 대한 사실상의 상황이 명확하게 기록돼있는 토지대장(임야대장) 등이 그것이다.

조사 결과 투자해도 문제가 없는 토지라면 마지막으로 계약의 주체가 누군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매각대상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모두 기획부동산 업체가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토지 소유자로부터 적법한 위임(위임장, 소유자의 인감증명서 등)을 받고 매각대행을 하고 있는 대리인인지의 여부를 확인한 후 계약에 임하는 것이 좋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기려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노력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깊이 새겨두었더라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발품을 팔아 확인 작업을 거쳤더라면 이 같은 대형 사고를 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듯싶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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