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에 금융위기까지 더해져 부동산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경매시장마저 예년에 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경매과열이라 할 정도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댔던 곳이다. 경매투자자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투자자에게 변화가 있다는 것은 곧 투자패턴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경매시장이 한참 과열됐었던 1,2년전과 비교하여 지금의 경매투자자들은 어떤 투자패턴을 보이고 있는지 한번 짚어보기로 하자.
안정적ㆍ소극적 투자패턴으로 U턴!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부동산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하자 경매시장에서는 우선 낙찰받고 보자는 식의 공격적이고 투기적인 투자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물건에 100명 이상 입찰경쟁이 붙은 사례도 수차례 나왔고, 무슨 호재라도 있는 물건이면 40명 이상의 경쟁은 예삿일이 돼버렸다. 입찰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 만큼 낙찰가율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낙찰받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이랬던 경매시장이 참으로 한산해졌다. 실제 낙찰되는 건수도 20건이 채 안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경매법정마다 앉을 자리가 없어 복도나 통로까지 꽉 찼던 인파는 온데간데없고 듬성듬성 빈자리까지 보인다. 경쟁이 낮으니 낙찰가율도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저가 수준이거나 최저가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안정적이고도 보수적인 가격에서 입찰하는 사례가 빈번해졌고, 과거와 같은 감정가 이상의 낙찰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강남권을 비롯한 주요 유망지역 아파트의 경우에도 2회 이상 유찰된 물건이 수두룩해졌다. 불과 1,2년전만해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국내경기나 부동산시장이 언제 회복될지 점칠 수 없었던 터라 공격적인 부동산투자는 일반인들에게 있어 금기시되었다. 최근의 부동산 침체 및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다시 외환위기 때의 소극적이고 안정적인 투자 패턴으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투자판단기준, 개발호재에서 시세로 U턴!
부동산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든 2001년 하반기 이후부터 참여정부기간 내내 투자판단의 기준이 되었던 것은 시세가 아니라 미래가치가 반영된 개발호재였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던 연립ㆍ다세대가 2006년부터 최근까지 평균 낙찰가율 100%이상의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2년 이상 아파트 인기를 추월했던 것이나 아파트 및 토지가격 급등으로 인한 투기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2005년에 8.31대책을 내놓은 것 모두 개발호재로 인한 투기조짐이 원인이 됐다.
MB정부 들어서 경매투자 판단기준은 무엇으로 바뀌었을까? 바로 시세다. 앞이 불투명하니 미래가치를 반영하여 입찰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그간 지분값이 오를 만큼 올라 개발호재라는 메리트도 반감됐던 만큼 당장의 시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게 됐다. 외환위기 당시의 시세에서 개발호재로 다시 시세로 투자판단기준이 바뀌고 있다.
뚜렷한 투자대상이 없어졌다.
외환위기 당시 실물경기와 부동산시장의 동반침체로 아파트, 상가, 토지를 불문하고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뚜렷한 종목은 없었다. 외환위기를 벗어나면서 2001년 이후에는 재건축 바람을 타고 재건축 아파트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2003년 10.29대책 이후부터는 아파트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하고 전국적으로 개발호재가 풍부한 토지시장으로 투자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투기광풍이라 할 정도로 토지시장이 과열되자 이를 규제하기 위해 2005년 8.31대책이 수립됐고, 이후 토지에 대한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2006년부터 새롭게 등장한 상품이 바로 연립ㆍ다세대이다. 뉴타운, 재개발, 경전철 등 도심내 각종 개발호재가 풍부해졌고, 아울러 LTV, DTI 등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는 대출규제에 대한 반사적 이익을 누리면서 2008년 상반기까지 연립ㆍ다세대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멈추지 않고 상승했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아파트는 연일 가격이 하락했고, 상가는 경기침체 영향으로 공실만 늘어갔다. 토지는 아직도 부재지주에 대한 양도세 중과나 종부세 부담으로 장기투자나 개발목적 투자가 아니면 선뜻 나서기가 어려워졌다.
그나마 개발호재가 뒷받침됐던 연립ㆍ다세대만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시장상황이 워낙 좋지 않고 가격이 많이 올랐던 탓에 낙찰가율이나 입찰경쟁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정을 붙이고 잊혀진 듯 투자에 올인할 수 있거나 특별히 튄다는 종목이 없을 정도로 투자를 선도하는 종목이 불투명해졌다.
소액투자자가 사라졌다.
2002년 7월 1일 민사집행법의 시행으로 인한 경매대중화, 2002년 12월 18일의 농지법 개정(2003년 1월 1일 시행)으로 가능하게 된 주말농장 용도의 농지소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경매시장을 찾는 소액(개미)투자자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재개발, 뉴타운 등 개발붐을 타고 5000만원 내외의 비교적 소액(대출 포함 1억원 내외)으로 투자할 수 있는 인천, 부천, 강서지역 등의 연립ㆍ다세대에 소액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연립ㆍ다세대를 전문으로 하는 공동투자클럽, 이른바 ‘공투족’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점도 이 때다.
요즈음은 소액투자자나 공투족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한동안 부동산가격, 특히 재개발지분 가격이 급등한 탓도 있었지만, 실물경기위축으로 살림살이가 빠듯해져 종자돈 내놓기가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아파트값이나 연립ㆍ다세대 지분가격 하락으로 소액투자자나 공투족이 다시 등장할 법도 하건만 아직까지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안정적이고 소극적인 투자경향을 보이고, 시세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딱히 드러난 투자대상이 없고, 소액투자자들이 빠져나가 썰렁한 법정, 요즈음 경매시장의 모습이다. 외환위기 당시의 경매시장과 너무나도 비슷한 풍경이다. 다만 당시 경매물건은 기업형이고 서민형이고 할 것 없이 죄다 쏟아져 나와 물량이 넘쳤으나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그간‘불황이 곧 기회다’라는 말이 경매시장에서는 더 부합돼 왔지만 최근의 투자패턴으로 보아 투자자들은 지금의 경매시장이 아직은 기회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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