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또 부동산중개업소에 의한 100억원대의 대형 사기, 횡령 사건이 보도되었다.
■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피해금액은 크지만 그 수법은 의외로 너무나 간단하다. 건물주로부터 임대차계약체결을 위임받은 중개업자가, 실제로는 임차인과 월세없이 보증금만 있는 임대차계약(시중에서는 쉽게 “전세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주에게는 보증부 월세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거짓말하는 수법으로 보증금차액을 횡령한 것이다. 예를들어, 임차인으로부터 월세없이 임대차보증금 1억원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차인에게는 이런 내용으로 임대차계약서를 만들어주지만, 건물주에게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임대료 70만원으로 임대차 계약이 체결된 것처럼 허위보고하고 그에 해당하는 가짜 월세계약서를 만들어 건네주면서, 그 차액 9,500만원을 임의로 써버리는 방식이다. 보증금 보다는 수익률이 높은 월세계약을 건물주가 선호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런 수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 일대 거의 대부분의 임대차계약을 그 중개업소에서 체결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렇게 건물주가 희망하는 월세계약을 잘 체결해주다보니 계약 잘 하는 것으로 소문나서 임대의뢰가 더 늘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피해액수는 더욱 커졌을 것이다. 다른 사건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이 중개업자 역시 자신의 이런 범죄행각이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월세도 상당기간 문제없이 지급해왔을 것이다.
■ 이처럼 중개업자가 거액을 횡령해서 도주한 사건에서, 임대인이나 임차인 중 누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접근하는 이론 자체는 간단하지만,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가 않다.
향후, 이 문제는 임대인이 임차인을 상대로 건물명도소송을 제기하거나, 반대로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인 분쟁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이런 사건에서는, 그 중개업자에게 임대인을 대리할만한 적법한 대리권이 있었는지, 아니면 표현대리가 성립하는지 하는 것이 쟁점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건물주가 중개업자에게 임대차에 관한 전적인 권한을 위임한 것이라면, 중개업자가 임차인으로부터 전세형태로 임대차계약을 하고 임대차보증금을 수령한 행위는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임대인과 중개업자의 위임관계는 법적으로 유효하고, 다만 임대인을 위해 전세보증금을 보관하고 있던 중개업자가 이를 횡령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임차인은 임대인에 대해서 지급한 보증금 전액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 결과 피해자는 임대인이 된다.

반면에, 건물주는 월세계약만을 위임했는데 중개업자가 위임권한을 무시하고 전세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면 결론이 나뉘어질 수 있다. 이 경우는 중개업자가 정당한 위임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건물주를 대리하여 전세계약을 체결한 행위를 건물주에 대해 당연히 유효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전세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으로서는 중개업자가 건물주를 대리하여 전세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으로 오인(誤認)한 것인데,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다시 말하면 믿음에 큰 과실이 없는 것으로 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민법상 표현대리(表現代理)제도라는 논리에 따라 임차인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그러한 믿음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임차인의 권리보장은 어렵게 된다. 판단결과 표현대리가 성립되지 않으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보증금반환을 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론은 간명하지만,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중개업자가 없어지거나 임대인과 진술이 다른 경우가 많아, 과연 임대인이 중개업자에게 월세계약만을 위임했는지, 아니면 임대차계약 전반을 위임했는지 하는 사실관계가 애매할 수 있다. 임대차계약체결하는 위임장에 그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도장을 중개업자에게 아예 맡겼는 지 여부 등을 종합해서 표현대리 판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론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런 점 때문에 법원실무에서는 양측 모두에게 일정부분 손해를 감수하는 방향으로 조정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결과만을 두고 보면 임대인, 임차인 모두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을 본다면, 중개업자에게 임대차계약을 위임할 경우에는 임대인이나 임차인 모두가 상당한 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임대인 입장에서 본다면, 중개업자에게 도장 자체를 맡기는 것은 금물이다. 도장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서류조작의 근원이 될 수 있고, 향후 “표현대리”라는 면에서도 불리하게 판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임장을 작성할 때도, 위임의 내용을 보다 명백하고 좁게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백지 위임장도 반드시 피해야한다. 또, 계약체결 이후에라도 임대차목적물을 가끔씩이라도 방문하는 등 사후관리도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임차인으로서는, 위임장의 구체적인 내용이 체결하고자하는 계약내용과 일치하는지, 임대인의 인장이 인감도장이 틀림없는지 등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임차인이나 임대인 모두, 적어도 계약서작성할 때만큼은 ‘서로를 대면하거나 아니면 직접 통화라도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계약체결하는 과정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자리를 함께하거나 유선통화의 형식으로라도 본인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하게 되면 위와 같은 사고는 거의 예방가능하다. 수천만원 이상이나 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상대방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지도 않은채 너무나 쉽게 돈을 주고받는 지금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상-
■ <참고법령>
▶민법 제125조(대리권수여의 표시에 의한 표현대리)
제삼자에 대하여 타인에게 대리권을 수여함을 표시한 자는 그 대리권의 범위내에서 행한 그 타인과 그 제삼자간의 법률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제삼자가 대리권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민법 제126조(권한을 넘은 표현대리)
대리인이 그 권한외의 법률행위를 한 경우에 제삼자가 그 권한이 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본인은 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 민법 제129조(대리권소멸후의 표현대리)
대리권의 소멸은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삼자가 과실로 인하여 그 사실을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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