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미분양물건이 크게 늘고있는데, 이 과정에서 분양대금을 분양계약서상 지정된 계좌로 입금하지 않아 수분양자들의 피해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 분양관행상 분양규모가 어느 정도가 되면 건물분양은 자기자본만이 아니라, 시공사나 금융기관의 자금을 차용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원활한 공사진행을 위하여 수분양자들이 납부하는 분양대금은 건축주인 분양회사에 직접 지급하는 대신에, 시공사나 금융회사 아니면 이들이 지정한 신탁회사의 계좌로 입금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분양계약서상에 분양대금 입금계좌를 기재하고, 이 계좌에 입금되지 않으면 분양대금납부가 무효가 된다는 뜻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정계좌에 분양대금을 입금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특히 이런 현상은 미분양된 물건이 많은 분양현장에서 자주 발생한다. 미분양물량이 많다는 것은 결국 해당 분양사업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시공사나 금융회사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분양회사측에서 분양대금을 다른 곳에 빼돌리는 등의 무리수를 사용할 가능성이 정상적으로 분양되는 현장보다는 크기 때문이다.

분양계약서상 지정계좌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으로 분양대금이 지급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지정계좌가 기재된 분양계약서가 아니라 분양회사측에서 다른 계약서를 사용해서 지정계좌의 존재를 수분양자가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지정계좌가 명시된 분양계약서를 사용해서 분양계약이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양회사 대표에게 직접 내지 대표가 알려준 계좌로 입금하거나 아니면 분양회사 본사를 직접 방문하여 대금을 지급하는 등 계약서상에 인쇄된 문구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는, 분양계약서상에 기재된 지정계좌와 다른 계좌로의 송금이나 직접 현금으로 입금해 달라는 분양회사측의 권유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수분양자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그래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적인 판단은 반대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 즉 ① 지정계좌가 기재된 분양계약서가 아닌 다른 분양계약서 형식으로 계약이 체결되어서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지정계좌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 수 없었던 경우, ② ‘중도금, 잔금은 지정계좌로 납부해야 한다’고 계약문구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도금, 잔금이 아니라 계약금을 지정계좌입금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지급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분양계약서상에 기재된 지정계좌로의 입금이 아닌 다른 방법의 대금지급은, 분양회사 아닌 다른 이해관계자, 즉 시공사, 금융회사, 신탁사와의 관계에서는 보호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지정된 계좌가 아니라도 분양주체측에 대금이 지급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보호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지정계좌로의 입금은 분양사업완성을 위한 시공사나 금융회사와의 이해관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분양계약서상에 지정계좌와 그 효과에 대해 명기되어 있는 이상 수분양자로서도 이러한 계약조건을 알고 분양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분양계약서상 지정계좌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분양대금납부를 권유받게 되면 수분양자들로서는 일단 그 진의를 의심하면서 해당 분양사업의 이해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시공사, 금융회사, 신탁사 등에 직접 문의해 볼 필요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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