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부동산 법률] 부동산거래와 동시이행의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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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부동산거래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고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라기 보다는 서로간에 주고받는 댓가적인 관계에 있고, 또 개별적인 서로간의 의무들 중에는 시간적으로 서로 동시에 이행해야 할 관계에 놓인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실제 사례를 들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동산거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 총 대금 10억원에 아파트매매계약을 하면서, 계약금은 1억원으로 정해 계약당일에 수수하고, 나머지 9억원 중 4억원은 계약체결 한달 후에 중도금이라는 명목으로, 나머지 5억원은 계약체결 두달 후에 잔금조로 수수하기로 약속했다고 가정해 보자. 통상적인 매매계약의 경우, 중도금 4억원을 지급하는 단계에서는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일방적으로 4억원을 지급하는 의무만 있을 뿐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이행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하지 않는 단계에서 매도인이 매매계약을 해제하고자 한다면 일방적인 계약해제절차를 거치면 된다. 하지만, 나머지 잔금 5억원의 지급은 매매대상아파트의 소유권이전등기서류를 제공하고 아파트의 점유를 매수인에게 넘겨주는 인도의무와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잔금단계에서 계약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매도인의 의무를 이행제공하여야만 한다.
■ 다음의 사례는 필자가 소송과 자문을 맡아 처리한 실제 사례인데, 동시이행의무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다.
부천에 소재하는 상가건물 내의 점포 하나를 분양받아 계약을 해제한 의뢰인의 사연인데, 점포 분양계약과정에서 분양대금의 30%에 해당하는 잔금부분을 상가건물의 건축이 완성되어서 임차인이 구해지면 임차인으로부터 받게 될 임대차보증금으로 지급한다는 의미로, ‘임대차보증금을 잔금으로 갈음한다’는 취지의 문구가 분양계약서에 특약조항으로 기재되었다. 그런데, 상가건물이 완성되고도 1년이 넘도록 분양계약 당시에 생각했던 조건의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게되자 이 의뢰인은 분양대금의 30%에 해당하는 분양잔금납부를 거부했다. 분양 당시보다 상가점포의 가격이 내려가서 계약을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물론 있었다. 그러자, 건물 완공 이후 1년이 지났는데도 분양대금 30%를 받지 못하게되어 마음이 조급해진 분양회사는, 임대차보증금을 잔금으로 갈음한다는 분양계약 당시의 당초 약속과 달리 이 의뢰인에게 ‘임차인이 구해지는 것과 별개로 분양대금을 지급해 달라’는 독촉을 하다가, 결국 ‘잔금미납을 이유로 분양계약을 해제한다’는 취지의 통고를 임의로 의뢰인에게 보낸 이후에 해당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임대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이 의뢰인은, 필자를 찾아와 분양회사를 상대로 지급한 분양대금 전액과 지연이자를 청구해 달라는 소송을 의뢰했는데, 이 의뢰인이 개인적으로 중점을 둔 부분은 분양계약서상에 기재된 ‘임대차보증금을 잔금으로 갈음한다’는 문구였다. 임대차보증금을 받아 잔금으로 충당하기로 약속했다면 언제까지든 보증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될 의무가 분양회사측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잔금미지급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분양계약을 해제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이 의뢰인의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의뢰인은 이런 생각은 반드시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임대차보증금을 잔금으로 갈음한다’는 문구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수 있는 매우 애매한 문구라고 할 수 있다. 임차인이 원하는 조건의 임대차계약이 성사될 때까지 잔금지급을 유예하면서 계속 기다려야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임대차계약이 체결될 수 있는 상식적인 시간 정도까지만 잔금납부의무를 유예해 준다는 의미인지 논란의 여지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문구 그 자체 뿐 아니라 분양계약 당시의 상황, 당사자의 의도, 그 밖의 구체적인 약속 내용 등을 종합해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해석을 좌우할만한 특별한 다른 사정이 없다면, ‘임대차보증금을 잔금으로 갈음한다’는 문구의 의미는 후자 즉, 임차인의 원하는 조건의 임대차계약이 실제로 체결될 때까지가 아니라, 임대차계약이 체결될 수 있는 상식적인 시간 정도까지만 잔금납부의무를 유예해 준다는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더 크다.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면, ① 잔금지급시기가 오랫동안 확정되지 못하게되는 불명확한 법률관계가 지속될 수 밖에 없는데다가, ② 만약 임차인이 분양계약이행을 원치않을 경우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의로 임대차계약체결을 거부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런 점을 명백히하고자 한다면, 분양계약서상에 원하는 임대차조건을 자세히 기재하고 그 조건 이상으로 계약이 체결되어야한다는 문구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상가건물이 준공되고 1년 이상이 지나도록 임대차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분양자인 이 의뢰인의 잔금납부시점은 이미 도래한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분양회사측은 이 의뢰인의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법과 계약에 따라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경우 계약해제는 수분양자인 이 의뢰인의 귀책사유 때문이라는 점에서 의뢰인은 분양계약에 약정한 위약금까지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필자가 사건을 검토한 결과, 다행히도 분양회사측이 “동시이행의무”라는 개념에 대해 미숙한 덕분에 분양회사측이 취한 해제절차가 적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꼬집어낼 수 있었다. 분양계약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분양회사는 수분양자인 이 의뢰인에게 여러차례 서면으로 잔금지급을 독촉(최고)하고 해제통고를 했지만,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분양회사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愚(우)를 범하고 말았다. 적법한 계약해제를 위해서는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최고를 거쳐 해제의 의사표시를 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의무일 경우에 “상대방이 계약을 위반했다”고 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상대방이 상대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태만으로는 부족하고, 계약을 해제하고자 하는 측에서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의무를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만 한다. 수분양자가 비록 잔금납부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분양회사로서는 수분양자의 잔금납부의무와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분양된 해당 점포의 이전등기서류제공의무, 점포인도의무 등을 다해야 하는데, 이 분양회사는 이런 생각 자체를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계약해제의 요건이 되는 “계약위반상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분양회사는 상대방이 계약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이행을 최고하고 나아가 계약해제조치를 취했으니 이런 계약해제절차는 적법할 수가 없다. 적법하게 계약이 해제되지 않았으니 응당 분양계약은 유효한 상태에 있었는데 분양회사 임의로 다른 사람에게 해당 점포를 임대해버림으로써 오히려 분양회사측이 분양계약을 이행되지 못하는 법적인 이행불능의 상태를 야기함으로써 수분양자인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계약위반을 한 셈이다. 필자는 이런 논리로 분양회사를 상대로 분양대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예상대로 재판에서 승소했다.
이처럼 계약위반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동시이행관계에 놓인 의무를 이행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시에 이행해야 할 본인 스스로의 의무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앞서 본 경우와 같이, 우리 상식과는 달리 법적으로는 계약위반의 책임이 뒤바뀌어서 억울한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남탓이 아니라 내탓이요”라는 종교적인 구호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남의 의무위반을 논하기에 앞서 내 의무를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점,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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