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機(실기)한 解約(해약)

아파트 가격급등과 관련된 해프닝이다. 필자에게 상담을 의뢰한 사람은, 약 1달 전에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1채를 3억5천만원에 매수하고 계약금으로 2천5백만원을 지급했는데 계약체결 이후 갑자기 시세가 수천만원 상승한다는 소문이 돌자, 중개업자를 통해 매도인으로부터 ‘해약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그 지역 아파트 가격이 이미 상당히 상승했고 앞으로도 상당한 가격급등이 예상되는지라 계약금 배액만 받고 해약당하는 것이 너무 아쉽긴 했지만, 해약이 법에서 보장하는 매도인의 권리인지라 법에서 정하는 계약금의 배액만 받으면 해약당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라고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오히려 매도인이 계약금의 배액을 반환하기조차 아까웠던지 계약금 배액의 반환을 계속 미루면서 ‘반환되는 금액을 일부 깎아달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했다. 그렇치않아도 해약당하는 것이 억울했던 의뢰인으로서는 당연히 이 제의를 거절했고, 그러던 도중에 결국 중도금지급기일이 도래하게 되어, 의뢰인은 중도금지급기일에 바로 중도금을 공탁해버렸다고 했다.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매도인은, 매수인의 중도금공탁소식을 듣고서 부랴부랴 그날 바로 계약금의 배액을 공탁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의뢰인으로부터 필자에게 문의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매도인이 적법하게 해약하기 위해서는 민법 565조에 따라 상대방인 매수인이 이행에 착수하기 이전에(이 건에서는 중도금지급기일 이전임) 받은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여야 하는데, 이 건의 매도인은 중도금지급기일 이전에 해약을 하겠다는 의사만을 표시하였을 뿐 계약금배액의 제공을 한 사실이 없다는 점에서 매도인의 해약은 적법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중도금지급기일에 중도금지급의 방편으로 매수인이 적법하게 중도금을 공탁하여 이행에 착수해버렸다면, 그 이후에 이루어진 매도인의 계약금배액공탁은 실기(失機)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결국, 그 이후로 매도인은 적법하게 해약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놓치게 되었고, 앞으로는 매수인과의 합의가 없으면 계약해제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이 케이스는 통상적인 계약금 수준인 매매대금의 10% 이하로 계약금이 정해진 경우였는데도 불구하고, 가격상승을 예상하니 이전등기해주기는 싫고, 그렇다고 순식간에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자니 아까운 생각이 든 매도인이 결정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소탐대실한 꼴이 된 경우이다. 더구나 이익에 민감하고 영악한 매수인이었다면, 비록 약속한 중도금지급기일 이전이라도 매도인이 계약금배액을 제공하고 해약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기 이전에 바로 중도금을 공탁함으로써 매도인의 해약기회를 사전에 봉쇄할 수도 있었음에도 이러한 수를 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매도인은 자기생각만에 빠져 법적인 고려없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다.

서로간에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한 계약을 일방적으로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응당 법으로 정한 수준의 합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것인데, 자신의 이익에만 너무 집착하여 이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큰 불이익을 입게 된 사례라고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상-

<참고>
제565조 (해약금)
①매매의 당사자일방이 계약당시에 금전 기타 물건을 계약금, 보증금등의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교부한 때에는 당사자간에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대법원 1993.01.19 선고 92다31323 판결
가.민법 제565조가 해제권 행사의 시기를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로 제한한 것은 당사자의 일방이 이미 이행에 착수한 때에는 그 당사자는 그에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였을 것이고, 또 그 당사자는 계약이 이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만일 이러한 단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계약이 해제된다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고, 이행기의 약정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당사자가 채무의 이행기 전에는 착수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특약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있다. 나. 매도인이 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일정한 기한까지 해약금의 수령을 최고하며 기한을 넘기면 공탁하겠다고 통지를 한 이상 중도금 지급기일은 매도인을 위하여서도 기한의 이익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고, 따라서 이 경우에는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매수인은 매도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행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으며,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더욱이 매도인이 정한 해약금 수령기한 이전에 일방적으로 이행에 착수하였다고 하여도 매도인의 계약해제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다. 매도인이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계약을 해제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계약금의 배액을 제공하고 하여야 할 것이나, 이 해약금의 제공이 적법하지 못하다면 해제권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 안에 적법한 제공을 한 때에 계약이 해제된다고 볼 것이고, 또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하기 위하여 계약금의 배액을 공탁하는 경우에는 공탁원인사실에 계약해제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상대방에게 공탁통지가 도달한 때에 계약해제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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