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을 위반한 사람은, 지급한 계약금을 반드시 몰수당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종전에 ‘매매계약깨져도 계약금 반드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일부 독자의 경우 이 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언급을 해와서, 사례를 들어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잔금이 완납되기 이전 단계에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더 이상 대금을 납부하지 못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부동산 권리를 취득하고자 하는 측(매수인, 임차인 등)은 계약금을 당연히 돌려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 해약금과 위약금은 구별되어져야 한다.
계약금을 지급한 매수인이 스스로 지급한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는, 매수인으로서는 지급한 계약금반환을 포기해야 한다. 이는, 민법 제565조에 따른 것인데, 계약이행에 착수하기 이전(일반적으로, 계약금만 지급된 단계)에 해약을 원하는 계약 당사자가 계약금으로 정한 정도의 금액을 스스로 포기하고 임의로 계약을 해약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것이 바로 해약금조항이다. 매수인이 계약금만 지급된 단계에서 계약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법상 해약금조항에 따라 계약금반환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매수인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매도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 매도인으로서는 매수인의 계약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게 되는데, 이 경우 계약불이행의 책임은 응당 매수인에게 있으므로 계약해제는 당연히 적법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라고 하더라도 매도인이 계약금을 당연히 몰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오해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계약금을 몰수하기 위해서는 계약에서 위약금(손해배상의 예정)조항이 반드시 규정되어 있어야만 한다. 대법원 역시, ‘위약금조항이 계약에 없다고 하더라도 계약을 위반하면 계약금을 몰수할 수 있다는 관습법이 존재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이러한 태도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약금약정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중도금,잔금이 지급되지 않아 계약이 해제되면 무조건 계약금이 몰수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위약금약정은 반드시 계약서상의 특약조항으로 할 필요없이, 표준계약서상에 인쇄된 문구로 삽입되어 있더라도 원칙적으로는 무방하다. 더구나, 시중에서 유통되는 표준계약서 양식의 상당부분에도 이러한 위약금조항이 삽입되어 있는 편이다. 반면, 그러한 위약금 조항이 없는 표준계약서도 상당부분 유통되고 있고, 당사자들간에 직접 임의로 작성하는 계약서에도 위약금약정이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필자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인쇄된 표준계약서 중에서 위약금약정이 없는 경우가 대략 40% 정도나 되고 있었다. 표준계약서에 위약금약정이 없는 이유는, 표준계약서를 만든 업체측에서 위약금약정으로 착각하고 다른 조항을 삽입하였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위약금조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약금조항으로 오해하는 문구가 바로 위에서 본 민법상의 해약금조항이다. 위 두 조항은 법률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다. 해약금조항은, 계약이행단계의 이전에 계약자로 하여금 계약금을 스스로 포기하고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취지임에 반해, 위약금조항은 계약을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함에 있어 손해발생 사실이나 손해액에 대한 입증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여 계약당시부터 손해배상과 금액을 미리 예정하는 취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 유통되는 표준계약서는 두 가지 취지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중도금(잔금) 지급이전에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해 계약금의 2배를 지급하고, 매수인은 지급한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구는 엄연히 해약금조항임에도 불구하고 위약금조항으로 오해되면서, 해약금조항만이 표준계약서에 삽입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사실 해약금조항은 민법 565조에서 계약금을 해약금으로 추정하고 있어, 해약금조항이 별도로 계약서상 굳이 삽입되지 않더라도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이어서 사실상 삽입할 필요가 없는 조항이다.

■ 위약금약정이 없을 때는 계약위반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급된 계약
이러한 이론을 염두에 두고, (해약금조항만이 있고) 위약금조항이 없는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할 때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매매대금을 10억원으로 약정하면서, 계약금 1억원, 중도금 4억원, 잔금5억원으로 계약했다고 하자. 계약금 1억원만 지급되고 중도금지급 이전에 매수인이 도저히 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매수인이 계약에서 자진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도금지급기일 이전에 1억원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해야한다. 해약금규정에 따른 것이다. 해약의 의사표시를 하면 계약금 1억원은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만약 매수인이 이런 방법으로 계약금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행착수 시점 이후로는 합법적으로 계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즉,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할 의무를 계속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행에 착수하기 이전에 매수인이 해약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해약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즉, 이행착수 시점 이후에는 매도인과의 합의가 없는 한 계약금을 포기하고서라도 매수인 혼자 힘으로는 계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때부터는 매수인이 중도금 미지급이라는 계약 불이행에 대해 매도인이 어떤 권리행사를 할 것인지 매도인의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매도인이 중도금, 잔금을 지급해 달라는 청구(소송)을 한다면 지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반면에, 매수인이 중도금,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많은 경우 매도인으로서는 중도금, 잔금의 지급을 독촉하다가 계약을 해제해 버리곤 한다. 이 때 계약을 해제하는 매도인의 생각의 전제는, 매수인의 책임으로 계약이 해제된 것이니만큼 지급받은 계약금은 당연히 매도인이 몰수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매수인이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잘못이 있기 때문에 매도인으로서는 매수인의 책임을 근거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계약금을 당연히 몰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위약금약속이 없으면 계약해제의 원상복귀 법리상 계약금을 돌려줘야한다.
민법 계약해제의 법리상, 계약이 해제되면 계약은 소급적으로 무효로 되어 계약당사자는 계약이 체결되기 이전 상태로 원상복귀시킬 의무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매도인은 매수인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대신, 계약해제에 귀책사유(책임)가 있는 매수인에 대해 계약해제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인 계약의 경우에 부동산거래계약이 해제되었다고 하더라도 뚜렷한 손해가 없는 경우가 상당하고, 또한 손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곤란한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 위약금약정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즉, 위약금약정을 통해 계약을 위반한 측에서 계약금상당의 손해를 배상하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면, 발생한 손해를 굳이 입증할 필요없이 계약금을 몰수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위약금약정이 없다면 매도인으로서는 계약해제로 발생한 손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게 되어, 결국 받은 계약금을 돌려줘야 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위약금약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도인이 성급하게 계약을 해제해 버린다면, 매수인으로서는 계약금을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는 셈이 되는 것이다.

■ 계약해제 이전에 위약금약속이 있는지를 살펴라.
따라서, 매도인 입장에서는 매수인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성급하게 계약을 해제할 것이 아니라, 위약금약정이 있는지, 만약 위약금약정이 없다면 손해배상의 청구가 가능할 것인지 여부를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책임으로 계약이 해제되었다고 하더라도 계약금을 쉽게 포기할 것이 아니라, 계약서상에 위약금약정이 들어가 있는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재판 실무에서는 위약금약정이 없는 계약에서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해버린 사안에서, 보통은 받은 계약금 중에서 적절한 금액을 매수인에게 돌려주라는 식으로 조정을 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원만하게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법대로 판단해서 계약해제로 인하여 매도인이 입은 손해가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계약금은 전액 매수인에게 반환되어져야 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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