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부장 산업의 현실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지난 20년간 큰 변화를 겪었다. 한국과 무역전쟁을 거쳤을 뿐 아니라 주요 매출처가 일본 대기업에서 삼성전자나 샤오미 같은 해외 기업으로 이동했다. 이 기간에 한국과 중국에서는 소부장 국산화 노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핸드셋이나 TV 부품을 만들던 회사들이 가장 먼저 경쟁력을 잃었다. 니토덴코, 미쓰미, 알프스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이들 업체가 만드는 TV 편광판, 핸드셋 터치필름, 카메라모듈 액튜애이터 등은 한국이나 중국 업체들이 비교적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최근엔 기술 격차의 극복이 불가능해 보였던 소재에서도 우위를 빼앗기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세트업체가 일본의 소재 업체를 기술 개발 초기단계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배터리다. 배터리 기술 혁신을 한국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쇼와덴코와 같은 업체는 그들이 개발한 다양한 배터리 소재 사업을 포기하고 있다. 배터리 및 반도체 재료 분야의 선두 기업이었던 간토덴카도 과거의 역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장비업체들은 여전히 기술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 반도체 전공정에 도쿄일렉트론과 레이저텍, 후공정에 디스코와 어드밴테스트라는 기업이 있다. 이들 기업은 반도체 공정의 주요 고객군이 대만과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 핸드셋, 디스플레이, 배터리 분야를 한국과 중국 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는 상황과 대비된다.

TSMC, ASE 등 대만 반도체 대표 기업들은 장비나 재료를 국산화하려는 노력을 크게 쏟지 않았다. 그리고 이 회사들이 반도체 기술을 선도해 나가고 있다 보니, 장비분야에서는 아직도 일본산 장비를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사용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분야는 당분간 대만과 일본이 공조하는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소부장 업체 중에서는 배터리나 IT 완제품보다는 반도체 관련 장비 업체가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일렉트론, 레이저텍, 어드밴테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