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박 와인포니아 창업자 "한국 농업 노하우 담은 와인 만들겠다"
“한국의 전통 농업 노하우를 미국 와인에 담을 겁니다.”

세실 박 와인포니아 창업자(사진)는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연 비료를 개발한 한국 농장에서 재배법을 배워 나파밸리에서 상업화하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창업자는 미국의 유명 와인 산지 나파밸리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한국인 여성 와인메이커(와이너리에서 와인 제조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다. 2007년 와인 제조 전문 와인포니아를 창업한 이후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및 빈야드(포도밭) 관리, 와인 디자인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박 창업자는 한국산 포도로 만드는 와인 개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와인업계에선 한국 포도에 대해 ‘알이 크고 지나치게 달아 와인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창업자도 “한국 포도는 농익은 맛을 내는 나파밸리 포도와 맛이 다르기 때문에 레드와인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콤한 와인 제조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쌓은 와인 제조 노하우를 활용하면 ‘스파클링 와인’은 만들 수 있다”며 “한글 라벨을 붙인 와인 개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박 창업자가 한국적인 와인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나파밸리에 도전하면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식품영양공학과 출신인 그는 2001년 한국 식품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박 창업자는 “나파밸리도 미국 이민자들이 일군 땅”이라며 “미국에서 와인으로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창업자는 2014년부터 라틴어로 ‘혁신’이란 의미를 담은 ‘이노바투스’ 와인을 판매하고 있다. 와인명을 이노바투스로 지은 이유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와인 구대륙과 다른 ‘신대륙’ 나파의 혁신성을 담기 위해서다. 박 창업자는 “일반적으로 맛이 굉장히 ‘센’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지만 이노바투스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섬세한’ 와인”이라며 “음식과 어울리면서 향이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게 혁신의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노바투스는 나파밸리는 물론 인접한 대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브로드웨이의 유명 극장인 오르페움이 이노바투스를 ‘공식 와인’으로 선정해 서비스할 정도다. 2020년엔 경제잡지 포브스, 유명 와인 평가 앱 ‘비비노’ 등이 개최한 와인 콘테스트에서 수상했다.

폐쇄적인 미국 와인업계에서 한국 출신 여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으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고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꼽았다. 박 창업자는 “와인의 질과 맛에 와인메이커의 마음가짐이 반영된다는 말이 있다”며 “‘성공에 대한 갈망’ 같은 조급함을 버리고 ‘항상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널리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