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의 도매 재고가 1997년 이후 가장 많이 쌓인 것으로 집계됐다. 재고 정리 부담이 커지면서 유통업계가 인플레이션에도 쉽게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미국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는 모건스탠리의 분석을 인용해 “미국 기업이 보유한 도매·내구재·의류 재고 규모가 8000억달러(약 99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이 재고 규모는 1997년 이후 최고치다. 코로나19 감염병 유행 이전 수준(약 7000억달러)을 웃돈다. 배런스는 “미국 기업들의 제품 재고가 늘면서 실적 악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재고가 쌓이는 현상은 올초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코로나19 유행 완화로 소비 수요가 늘면서 오히려 재고 부족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기업들이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자 재고량 증가분이 판매량 증가분을 웃도는 현상이 나타났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S&P500지수에 포함돼 있는 유통업체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재고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보다 25%포인트 높았다.

과잉 재고는 유통업체들의 영업이익률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상당수 유통업체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자재 비용, 물류비 상승을 고려해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비용 상승분만큼 제품 가격을 올리면 재고를 처리하기가 어려워진다.

배런스는 재고 증가, 가격 결정력 약화, 영업이익률 감소 등의 삼중고에 직면한 기업으로 대형마트 체인점 업체인 타깃을 꼽았다. 타깃은 지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 늘었는데, 재고가 같은 기간 43%나 급증했다. 주당순이익(EPS)은 2.19달러로 월가 예상치(3.07달러)를 한참 밑돌았다. 타깃 주가는 지난 27일 뉴욕시장에서 167.14달러를 기록했다. 이달에만 27% 떨어졌다.

스포츠용품 소매업체인 딕스스포팅굿즈도 25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수익 전망치를 연초 전망 대비 15% 낮췄다. 전년 동기 대비 40% 늘어난 재고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수석 전략가는 “지금 시장이 우려해야 할 위험은 과잉 재고”라며 “재고 증가와 가격 책정의 어려움이 이제서야 주가에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