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없는 범죄도시 메데인…신간 '청부 살인자의 성모'
1990년대 초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 당시 이곳은 마약과 살인이 넘쳐나는 현실의 '소돔과 고모라'였다.

알렉시스와 '나'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짐마차꾼에게 말을 착취하지 말라며 욕설을 하고, 뒤를 돌아보는 그를 알렉시스가 총으로 살해한다.

"메데인에 사는 건 죽은 채 이 삶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야."
알렉시스가 이 장면을 목격한 택시 기사마저 살해한 뒤 '나'는 변명하듯 내뱉는다.

콜롬비아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03년 스페인어권 문학계 최고 권위의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받은 페르난도 바예호(80)의 대표작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다.

신간 '청부 살인자의 성모'는 폭력조직과 청부 살인자로 가득한 메데인 하층민의 삶을 여과 없이 묘사한다.

1993년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거두였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세상을 뜬 뒤 그의 조직은 뿔뿔이 흩어지고 도시의 많은 청부 살인자들도 덩달아 일거리를 잃는다.

하지만 쿨레브리(해묵은 원한)에 사로잡힌 십 대 '청부 살인자'들은 무차별적인 살인과 폭력을 멈추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국을 떠났다 돌아온 문법학자인 주인공 '나'는 실직한 청부 살인자 중 한 명이자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알렉시스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이후 그와 동행하게 된다.

알렉시스의 살인은 아주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비롯됐다.

자신을 호모라 불렀다는 이유로, 길에서 부딪혔다는 이유로, 아파트에서 듣기 싫은 음악을 너무 크게 틀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

연속 살인에 제동을 거는 사회 시스템은 없다.

하지만 여느 다른 청부살인자처럼 알렉시스도 다른 청부살인자의 총에 생을 마감한다.

알렉시스를 떠나보낸 '나'는 또 다른 청부 살인자 윌마르를 사랑하고 그와 동행하게 된다.

알렉시스와 윌마르의 숨겨졌던 관계는 작가가 그리고자 한 분노와 원한이 뒤엉킨 메데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일상적인 살인과 폭력을 여과 없이 묘사함으로써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범죄의 악순환과 이를 막지 못하는 부패한 콜롬비아 사법 체계와 정치에 분노하고 일침을 가한다.

민음사. 212쪽. 1만3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