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연동제 도입 토론회에 입장하는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왼쪽 두번째)과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세번째), 김정재 의원(첫번째)과 한무경 의원(네번째). 중기중앙회 제공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토론회에 입장하는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왼쪽 두번째)과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세번째), 김정재 의원(첫번째)과 한무경 의원(네번째). 중기중앙회 제공
국민의힘이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단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제도 도입에 소극적이던 국민의힘도 중소기업의 납품단가'제값받기'를 위한 법제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납품단가연동제는 도입 논의가 시작된 2008년 이후 14년만에 국회 문턱을 통과하게 됐다. 하지만 시행까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한시가 급한 중소기업계의 애로를 당장 해소하기엔 한계라는 분석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하도급법(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것”이라며 “하도급법에 납품단가와 관련한 조항을 넣어서 강제화할 것이고 제도적 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와도 이미 협의를 다 했다”며 “5월 안에 입법으로 보완하겠다”고 부연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주요 과제에서 빠졌던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여당이 갑자기 서두르게 된 것은 내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688만개 중소기업계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최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중소기업의 75.2%가 경영난에 처했고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 대금에 반영한 곳은 4.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 의장은 "삼성이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고 있는 점을 다른 대기업들도 알아야한다"며 "(법안 개정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발점이 되길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기업보고 무조건 모든 부담을 떠안으라고 하진 않을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이 올라갈 때 뿐만 아니라 내려갈때도 연동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선 찬반 격론이 치열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계의 호소에, 윤석열 대통령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중소기업의 수익성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중소기업이 제값을 받아야 근로자에 대한 복지도, 새로운 일자리도, 기술개발과 품질혁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 본부장은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늘면 중소기업도 늘어야하는 게 정상이지만 현재는 대부분 원가도 못건지는 상태"라며 "기본적인 상생조차 되지 않으니 법개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중소기업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무경 의원도 "납품단가 연동제는 힘없는 중소기업에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다. 가격을 정상으로 돌려달라는 것"이라며 "공정하고 상식적인 제값받기 문화를 만들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와 재계 단체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가격에 대한 법적 개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이 맞다"며 "법 개정 이전에 거래관행과 계약서 상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개선해야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와관련 오는 7월부터 대중소기업간 불공정 계약에 대해 직권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삼성 등 모범적인 대기업의 상생 계약서를 참고해 표준계약서를 제작해 8월중 배포하겠다고 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다양한 원자재에 대해 일일이 법으로 가격 조정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이달내 하도급법 개정안을 마련하면 기존에 발의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과 함께 여야 합의안을 만들어 국회 통과시킬 전망이다.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와 납품단가 반영의 법적 근거, 어길 경우 처벌 조항만 법에 담기고 구체적인 원자재 가격 기준과 범위, 인상율 조건 등은 중소기업계와 재계, 공정위와 중소벤처기업부간 협의를 거쳐 시행령에 담길 전망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실제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기까지 수 개월이 걸릴 예정이어서, 이미 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본 후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