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피가 프랑스에서 16조원 이상을 약품 피해자 가족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1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법원은 사노피에 간질 치료제 발프로에이트 때문에 자폐증을 진단받은 자녀의 가족에게 40만유로(약 5억3400만원) 이상의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사노피가 발프로에이트의 부작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환자 가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발프로에이트는 프랑스에서 ‘데파킨’이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프랑스 보건당국은 이 약이 2150~4100명 어린이의 신체적 기형과 최대 3만400명의 아기 신경발달 장애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추정했다. 3만명이 넘는 아이들의 가족에게 40만유로를 지급할 경우 지급액은 121억6000만유로(16조2200억원)에 이를 수 있다.

법원은 이 약이 임신부에게서 향후 아이의 기형과 신경행동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성을 사노피가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결론내렸다. 이어 약물의 첨부된 설명서에 관련 위험이 언급돼 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에서 자폐증의 원인을 두고 개별 환자 사례와 약물 간의 연관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의 이같은 결정은 지난해 9월 시작된 집단 소송으로 사노피가 공식 조사를 받은 뒤에 나왔다. 당시 사노피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보상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사노피는 제품 정보와 제품에 포함된 설명서를 수정하기 위해 프랑스 보건당국에 여러 차례 요구했다며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발프로에이트 내용 변경건에 대해 보건당국이 거부한 것을 법원이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노피 대변인은 “이 약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된 약으로 효과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법원 또한 이 약의 이익과 위험 비율이 긍정적이라고 보고 있으며, 수백만명 간질 환자에게 여전히 필수적인 약”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달리 미국에서는 2011년부터 이 약물의 임신 중 위험성이 표지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임신 중 발프로에이트를 복용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인지능력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 약물의 설명서에 이 같은 내용을 추가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