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현황판.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현황판. /연합뉴스
최근 3년여간 국내 5대 암호화폐거래소에서 매매·입출금 거래가 지연되거나 접속이 안 되는 등의 사고가 70건 넘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로 인한 투자자 손실을 보상하는 규정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국내 암호화폐 하루평균 거래 규모는 11조원을 넘어서며 코스닥 시장과 맞먹을 만큼 불어났지만 정부 승인을 받은 대형 거래소마저 기본적인 투자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 3월 말까지 이들 거래소에서 접속 장애나 매매 지연, 시세 오류 등의 사고가 발생한 건수는 모두 54건이었다. 이밖에 제출 자료에는 누락됐으나 한국경제신문이 각 거래소 홈페이지에서 추가로 확인한 ‘접속 지연’ ‘해킹으로 인한 시스템 긴급 점검’ ‘원화 입출금 서비스 지연’ 등 각종 서비스 장애 공지까지 합하면 사고 건수는 모두 71건에 달했다.

거래소별로 보면 국내 거래 규모가 가장 큰 업비트가 23건, 빗썸이 21건이었고 고팍스 17건, 코인원 6건, 코빗 4건 순이었다. 이런 서비스 장애는 한 시간 넘게 지속되는 경우가 많았고 길게는 여섯 시간도 이어졌다.

소비자 피해 생겨도 보상은 미미

하지만 실제 이용자가 경험한 서비스 결함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비트는 지난해 11월 알고랜드 코인 상장일에도 시세가 장중 100% 넘게 요동치면서 거래가 몰리자 매매 지연을 겪었지만 '서버 멈춤은 없었다'며 별도로 공지를 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암호화폐거래소들은 증권사처럼 고육지책으로 전화 등을 통해 주문을 할 수 있는 대체·비상수단도 없는 상태”라며 “만일 증권사에서 이런 사고가 반복됐다면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이 24시간 열리고 시세가 초 단위로 바뀌는 코인 거래의 특성상 이런 사고는 투자자에게 치명적이지만 제대로 된 보상은 미미하다. 코인원 고팍스 코빗은 모든 사고에 대해 보상을 하지 않았고, 빗썸은 보고한 사고 건수의 10%인 2건에 대해서만 일부 보상했다.

유일하게 ‘신속보상처리’ 정책을 운영 중인 업비트는 일부 사고에 대해 보상을 했다고 밝혔지만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알고랜드 매도 지연으로 200만 원가량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 한 투자자는 “업비트에서 제안한 보상액이 10만원대에 불과했다”고 했다.

서버 다운돼도 거래소는 '셀프 면책'

이는 거래소들이 마련한 광범위한 면책 조항 때문이다. 거래소들은 접속 폭주로 인한 서버 다운, 주문 폭주, 외주 시스템 하자 등으로 회원이 손해를 봐도 거래소가 고의 또는 과실이 없거나 관리자의 주의를 다했다면 책임이 없다고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소가 서버 오류에 대해 회사 책임을 면제하는 조항이 불공정약관이라며 시정을 권고했지만 대부분 거래소들은 ‘고의·과실 여부’만 면책 조건에 추가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고의·과실을 개인이 입증하기는 어려운 만큼 ‘셀프 면책’은 여전한 셈”이라고 했다.

윤창현 의원은 “24시간 운용되는 거래소 특성상 접속 장애는 소비자 피해로 직결된다”며 “당국은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수준의 피해보상 가이드라인을 권고하고, 각 거래소는 장애 지속시간과 발행유형별로 세분화된 소비자 보상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