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당국이 조셉 젠 전 추기경(90)을 11일(현지시간) 저녁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교황청은 체포 소식에 대해 곧장 우려를 표명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일제히 중국과 홍콩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홍콩 경찰은 45~90세 남녀 각 2명씩을 지난 10일부터 이틀 동안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외세와 결탁해 홍콩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 혐의가. 경찰은 개별 용의자의 신상을 밝히진 않았지만 ‘612 인도주의 지원기금’의 신탁관리자들이라고 발표했다. 이 기금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해 기소 위기에 처한 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려 마련된 기금이다. 지금까지 총 2억4천300만 홍콩달러(약 396억원)가량을 지원했다.

홍콩 경찰은 “(이들은) 외국 조직에다 홍콩에 대한 제재를 촉구해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혐의가 있다”며 “현재 추가 체포 작전도 시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홍콩 현지 언론에 따르면 체포된 이들 중에선 젠 추기경을 비롯해 마거릿 응(74) 전 입법회 의원, 가수 데니스 호(45), 후이포컹 전 린낭대 교수 등이 포함됐다. 모두 지난 11일 보석으로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젠 추기경은 홍콩 내에서 민주화 거목으로 불린다. 2006년 추기경으로 임명됐으며 3년 후 은퇴했다. 그는 2014년 우산 혁명,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시위 기념 촛불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홍콩 내 민주 진영을 지지해줬다.

체포 근거인 홍콩국가보안법은 2019년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 이후인 2020년 6월 제정됐다.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네 가지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최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서방 국가에선 이 법을 두고 반대파를 탄압하려 제정된 법이라고 비판한다. 국가에 위해를 끼치는 행위가 정확히 규정되지 않아서다. 제정 후 지금까지 홍콩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70여명이 체포됐다.

홍콩 경찰이 신임 행정장관의 눈치를 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존 리 전 보안국장(사진)이 지난 8일 신임 행정장관으로 선출되며 홍콩국가보안법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할 여지가 더 커져서다. 그는 2017년부터 보안국장을 지내며 홍콩국가보안법을 적극적으로 집행해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젠 추기경의 체포 소식이 퍼지자 세계 곳곳에서 우려의 입장을 표명했다. 교황청은 11일 성명서를 내며 “젠 추기경 체포 소식을 우려 속에 접했고 현재 홍콩 당국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도로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과 홍콩 당국을 향해 “홍콩 시민들을 겨냥하는 것을 중단하고 부당하게 구금되고 기소된 이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발표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홍콩 당국이 반대파를 억누르고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약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의도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대표는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과 홍콩 기본법에 보장된 기본적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