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언제부터 ‘존경하는 부모님’이 ‘지긋지긋한 노인네들’로 바뀌었을까.”

최근 출간된 장편소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자음과모음)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엄마를 보살피던 마흔일곱 작은딸은 한숨과 함께 이런 말을 내뱉었다. 책을 쓴 류현재 작가는 “몇 년 뒤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어떤 가족도 노인 부양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당신네 가족만 힘든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령화가 국내 출판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노인 돌봄’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인기를 얻는가 하면, 고령 독자를 겨냥한 ‘큰 글자책’도 속속 나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진행 속도에 맞춰 출판사들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바꾸고 있다.

쏟아지는 돌봄 소설

고령화가 바꾼 출판시장…돌봄·큰글자책 뜬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들어간 일본에서 ‘개호(介護)소설(돌봄 소설)’ 장르를 연 책은 1972년 출간된 <황홀한 사람>이었다. 이때만 해도 인기 없는 주제이던 나이듦과 치매, 돌봄의 문제를 다뤘는데도 출간한 해에만 192만 부나 팔렸다. 이후 비슷한 소설이 줄을 이었다.

국내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며느리와 딸, 아내에 대한 서사는 1970~80년대에도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소설의 핵심 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돌봄 자체를 다룬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올 들어선 하나의 ‘큰 흐름’이 됐다. 지난 3월 출간된 <돌보는 마음>은 치매 아버지를 챙기게 된 노년 여성 등의 이야기를 그렸다. 비슷한 시기 출간된 <수상한 간병인>은 스무 살 간병인과 파킨슨병에 걸린 70대 노인의 기묘한 인연을 좇는다.

이상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 작가들도 뛰어들었다. 최근 단편소설 ‘굉을 기다리는 밤’을 발표한 손홍규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노모의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부부의 엇갈리는 회한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편혜영(<어쩌면 스무 번>)과 권여선(<아직 멀었다는 말>)도 간병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룬 단편을 내놨다. <레모네이드 할머니>와 <깃털>처럼 추리소설 및 과학소설 형태로 노인 문제를 다룬 작품까지 나왔다.

김지윤 문학평론가는 “고령화는 이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며 “돌봄과 노인 문제를 다룬 소설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 857만 명에서 2024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선다.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은 노인이 된다는 얘기다. 20년 뒤엔 3명 중 1명이 노인인 세상이 된다.

‘큰 글자책’ 전성시대

큰 글자책 출간도 붐을 이루고 있다. 일반 단행본 글자 크기인 9~10포인트보다 큰 16포인트로 인쇄한 책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9년 576종이던 큰 글자책 출간 종수는 2020년 1042종, 2021년 1410종으로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큰 글자책 판매량은 2020년에 비해 28.5%나 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판사들은 큰 글자책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시장이 작아 소량 인쇄해야 하는 까닭에 책값을 비싸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데다 책의 크기가 커 서가에서 면적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고령화는 순식간에 이런 판도를 바꿨다. 윤동희 미디어창비 출판본부장은 “큰 글자책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자 그동안 구색만 갖추던 도서관들이 적극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들도 ‘미래 먹거리’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 김영사는 2020년 큰 글자책 출간을 시작했고, 다산북스는 직접 큰 글자책을 펴내기 어려운 중소 출판사를 위해 리더스원이란 큰 글자책 제작·유통 대행 사업을 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자 출판사들의 대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스테디셀러의 글자 크기만 키우는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선 아예 신간을 낼 때 ‘큰 글자 버전’을 따로 만든다. 박찬수 책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는 “책을 멀리하게 된 고령층 상당수는 시력 문제로 인한 것”이라며 “큰 글자책 수요는 더 늘어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구은서/임근호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