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표현한 시대의 아이콘" 고 김지하 시인 조문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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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빈소에 원로정치인·문학계 등 각계 인사 발길 이어져
가족에 미소 보이며 작별…49재 6월 25일 서울서 추모문화제 예정
지난 8일 오후 8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의 빈소가 마련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9일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손학규·이재오 전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상임고문 이창복 전 국회의원 등은 고인과 오랜 세월 친분을 쌓은 원로 정치인들이 빈소를 지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고 김 시인과 서울대 친구 사이인 이부영 이사장은 "대학 시절부터 정치적 식견이나 문학적 감수성이 남다른 분이셨다"며 "어두운 시대에 자기의 입장을 거침없이 가장 뚜렷하게 표현해 우리 시대의 정치적·문화적·예술적 아이콘이 된 분"이라고 회고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안상수 홍익대 교수를 비롯한 작가와 지역 문인들도 빈소를 찾아와 예를 다했다.
또 한상철 전 원주시장을 비롯해 박정하 국민의힘 원주시장 예비후보 등 지역 정치인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넋을 기리는 조화로 가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는 조화를 보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오대산 월정사 원행스님과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 등 종교계와 문학계에서 보낸 조화도 빈소를 가득 채웠다.
김 시인은 전날 오후 4시 81세 일기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타계했다.
고인은 임종 당시 말도, 글도 남기지 않고 눈을 깜빡,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미소를 짓고서 유족들과 작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둘째 아들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제 아내와 장인·장모 등 함께 사는 가족 모두 임종을 지켰다.
일일이 손을 잡아보고 웃음을 보이신 뒤 평온하게 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임종 하루 전인 지난 7일부터는 죽조차 드시지 못했는데, 어제 임종 전 입에 넣어 드린 미음이 마지막 식사셨다"며 "말도, 글도 남기지 못하셨지만,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10여 년 전부터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했으며, 최근 들어 여러 차례 응급 상황을 맞기도 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9시다.
이어 오전 10시 화장장에서 화장을 한 뒤 부인 김영주 씨가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모셔진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주해 원주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중동고를 거쳐 1966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 등단했다.
이후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주목받았다.
한편, 김지하 시인의 후배 문화예술인과 생명 운동가 등은 고인의 뜻과 사상·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49재 날인 6월 25일 서울에서 추모행사를 갖기로 했다.
고인의 추모행사는 이부영 이사장, 정성헌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나선화 생명과 평화의 길 상임이사, 판소리 명창 임진택 연극 연출가, 최희완 민족미학연구소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김 시인의 본령은 생명 사상과 생명 미학에 있다"며 "고인과 함께 문화 활동을 한 예술인 등을 중심으로 '생명 평화 천지굿'이란 추모문화제를 화해와 상생의 차원에서 갖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가족에 미소 보이며 작별…49재 6월 25일 서울서 추모문화제 예정
지난 8일 오후 81세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의 빈소가 마련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9일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손학규·이재오 전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상임고문 이창복 전 국회의원 등은 고인과 오랜 세월 친분을 쌓은 원로 정치인들이 빈소를 지키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고 김 시인과 서울대 친구 사이인 이부영 이사장은 "대학 시절부터 정치적 식견이나 문학적 감수성이 남다른 분이셨다"며 "어두운 시대에 자기의 입장을 거침없이 가장 뚜렷하게 표현해 우리 시대의 정치적·문화적·예술적 아이콘이 된 분"이라고 회고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 선생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안상수 홍익대 교수를 비롯한 작가와 지역 문인들도 빈소를 찾아와 예를 다했다.
또 한상철 전 원주시장을 비롯해 박정하 국민의힘 원주시장 예비후보 등 지역 정치인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넋을 기리는 조화로 가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는 조화를 보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오대산 월정사 원행스님과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 등 종교계와 문학계에서 보낸 조화도 빈소를 가득 채웠다.
김 시인은 전날 오후 4시 81세 일기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타계했다.
고인은 임종 당시 말도, 글도 남기지 않고 눈을 깜빡,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미소를 짓고서 유족들과 작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둘째 아들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제 아내와 장인·장모 등 함께 사는 가족 모두 임종을 지켰다.
일일이 손을 잡아보고 웃음을 보이신 뒤 평온하게 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임종 하루 전인 지난 7일부터는 죽조차 드시지 못했는데, 어제 임종 전 입에 넣어 드린 미음이 마지막 식사셨다"며 "말도, 글도 남기지 못하셨지만, 눈을 깜빡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10여 년 전부터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했으며, 최근 들어 여러 차례 응급 상황을 맞기도 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9시다.
이어 오전 10시 화장장에서 화장을 한 뒤 부인 김영주 씨가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모셔진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주해 원주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중동고를 거쳐 1966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 등단했다.
이후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주목받았다.
한편, 김지하 시인의 후배 문화예술인과 생명 운동가 등은 고인의 뜻과 사상·문화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49재 날인 6월 25일 서울에서 추모행사를 갖기로 했다.
고인의 추모행사는 이부영 이사장, 정성헌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나선화 생명과 평화의 길 상임이사, 판소리 명창 임진택 연극 연출가, 최희완 민족미학연구소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김 시인의 본령은 생명 사상과 생명 미학에 있다"며 "고인과 함께 문화 활동을 한 예술인 등을 중심으로 '생명 평화 천지굿'이란 추모문화제를 화해와 상생의 차원에서 갖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