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폭동 30년] ④ "'엄마를 지켜라' 말 남기고 아버지는 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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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안 LA 한인회장 "30년 전 LA 경찰은 한인타운을 버렸다"
"3O년 행사는 화합과 평화의 무대…서로의 역사와 문화 알아야" 1992년 LA 폭동 당시 12살 소년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엄마를 지켜달라는 말을 남긴 채 한인타운 가게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들고 달려 나갔다.
소년은 그 뒤로 사흘 동안 집에 꼼짝없이 갇혀 TV로 생중계되는 한인타운 약탈의 현장을 지켜봤다.
그는 LA 경찰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현재 LA 한인회장인 제임스 안의 얘기다.
다음은 27일(현지시간) 진행한 안 회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한인 2세로서 겪었던 LA 폭동은.
▲당시 로드니 킹 사건 재판 과정도 TV 뉴스를 통해서 지켜봤고, 무죄 평결이 났을 때 흑인 폭동이 벌어질 것이란 걱정을 많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헬기가 LA 시내를 날아다녔고 화가 난 흑인들은 한인타운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버지는 가게를 지키기 위해 황급히 총을 들고 뛰쳐 나가셨다.
저에게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두렵고 무서웠다.
사흘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당시 LA 경찰의 대응은.
▲오죽하면 한인들이 총을 들고 가게를 지켰겠는가.
LA 경찰과 LA시(市)는 그때 우리 한인타운을 버렸다.
약탈과 방화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이 다쳐서 경찰과 소방차를 불렀지만, 당국은 한인타운을 보호하지 않았다.
--2021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항의 시위가 발생했을 때 주 방위군이 한인타운에 투입된 것은 30년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플로이드 사태 때는 주 방위군이 LA 한인타운에 제일 먼저 배치됐다.
주 정부와 LA 경찰도 LA 폭동 당시 방치된 한인 타운이 폐허가 됐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한흑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하는가.
▲한인 1세와 2세는 자란 환경이 다르다.
학창 시절 타민족 아이들이 아시안이라고 놀려 싸우기도 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만큼 말로써 갈등을 풀게 된다.
한인과 흑인 커뮤니티 리더들도 되도록 자주 만나서 현안을 논의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인회 차원에서 정부 지원금을 안내해주고 도와주는 활동을 할 때도 흑인 방문객이 더 많았다.
생활이 힘든 흑인들이 오죽하면 한인회를 찾아왔겠는가.
그들을 도와주면서 보람이 있었고 한흑 커뮤니티 간 화합도 느꼈다.
한인과 흑인은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한인회 등 한인 단체들이 흑인 단체들과 연대해 LA 폭동 30년 행사를 개최할 예정인데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올해 행사는 미래를 보고 한인 2세, 3세들이 한흑 커뮤니티의 발전과 화합, 평화를 도모하는 행사다.
흑인 사회 구심점인 퍼스트 AME 교회, 비영리 흑인단체 LA 어번리그와 함께한다.
한인 등 아시아계와 흑인 뮤지션,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고 치유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최근 뉴욕에서 한인 여성이 증오범죄에 희생됐다.
LA 상황은 어떤가.
▲증오범죄 피해 신고는 계속 접수되고 있다.
침을 뱉거나 욕을 하고 폭행을 하는 사례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쿵 플루'라고 얘기했던 것이 더욱 영향을 미쳤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100% 존재하는 현실이다.
다만, 인종 간, 커뮤니티 간 소통이 없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몰라서 생기는 일이다.
--차세대 한인으로서 당면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나는 한인 사회의 정치력 신장이다.
만약 30년 전 한인 사회가 정치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당하진 않았다.
현재 한국계 연방하원의원을 4명 배출했고 캘리포니아주와 LA시 의회에도 한인 의원들이 많이 진출했지만, 2세와 3세까지 이어져 한인 사회를 꾸준히 대변하는 조직적인 정치력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한흑 관계를 비롯한 타민족, 타인종 간 화합이다.
흑인이 미국 땅에서 겪었던 차별의 역사,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주해온 한인들의 고초를 서로 알아야 한다.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알면 갈등과 오해가 생기더라도 문제를 풀 수 있다.
/연합뉴스
"3O년 행사는 화합과 평화의 무대…서로의 역사와 문화 알아야" 1992년 LA 폭동 당시 12살 소년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엄마를 지켜달라는 말을 남긴 채 한인타운 가게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들고 달려 나갔다.
소년은 그 뒤로 사흘 동안 집에 꼼짝없이 갇혀 TV로 생중계되는 한인타운 약탈의 현장을 지켜봤다.
그는 LA 경찰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현재 LA 한인회장인 제임스 안의 얘기다.
다음은 27일(현지시간) 진행한 안 회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한인 2세로서 겪었던 LA 폭동은.
▲당시 로드니 킹 사건 재판 과정도 TV 뉴스를 통해서 지켜봤고, 무죄 평결이 났을 때 흑인 폭동이 벌어질 것이란 걱정을 많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헬기가 LA 시내를 날아다녔고 화가 난 흑인들은 한인타운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버지는 가게를 지키기 위해 황급히 총을 들고 뛰쳐 나가셨다.
저에게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두렵고 무서웠다.
사흘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당시 LA 경찰의 대응은.
▲오죽하면 한인들이 총을 들고 가게를 지켰겠는가.
LA 경찰과 LA시(市)는 그때 우리 한인타운을 버렸다.
약탈과 방화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이 다쳐서 경찰과 소방차를 불렀지만, 당국은 한인타운을 보호하지 않았다.
--2021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항의 시위가 발생했을 때 주 방위군이 한인타운에 투입된 것은 30년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플로이드 사태 때는 주 방위군이 LA 한인타운에 제일 먼저 배치됐다.
주 정부와 LA 경찰도 LA 폭동 당시 방치된 한인 타운이 폐허가 됐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한흑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하는가.
▲한인 1세와 2세는 자란 환경이 다르다.
학창 시절 타민족 아이들이 아시안이라고 놀려 싸우기도 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만큼 말로써 갈등을 풀게 된다.
한인과 흑인 커뮤니티 리더들도 되도록 자주 만나서 현안을 논의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인회 차원에서 정부 지원금을 안내해주고 도와주는 활동을 할 때도 흑인 방문객이 더 많았다.
생활이 힘든 흑인들이 오죽하면 한인회를 찾아왔겠는가.
그들을 도와주면서 보람이 있었고 한흑 커뮤니티 간 화합도 느꼈다.
한인과 흑인은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한인회 등 한인 단체들이 흑인 단체들과 연대해 LA 폭동 30년 행사를 개최할 예정인데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올해 행사는 미래를 보고 한인 2세, 3세들이 한흑 커뮤니티의 발전과 화합, 평화를 도모하는 행사다.
흑인 사회 구심점인 퍼스트 AME 교회, 비영리 흑인단체 LA 어번리그와 함께한다.
한인 등 아시아계와 흑인 뮤지션,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고 치유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최근 뉴욕에서 한인 여성이 증오범죄에 희생됐다.
LA 상황은 어떤가.
▲증오범죄 피해 신고는 계속 접수되고 있다.
침을 뱉거나 욕을 하고 폭행을 하는 사례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쿵 플루'라고 얘기했던 것이 더욱 영향을 미쳤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100% 존재하는 현실이다.
다만, 인종 간, 커뮤니티 간 소통이 없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몰라서 생기는 일이다.
--차세대 한인으로서 당면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나는 한인 사회의 정치력 신장이다.
만약 30년 전 한인 사회가 정치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당하진 않았다.
현재 한국계 연방하원의원을 4명 배출했고 캘리포니아주와 LA시 의회에도 한인 의원들이 많이 진출했지만, 2세와 3세까지 이어져 한인 사회를 꾸준히 대변하는 조직적인 정치력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한흑 관계를 비롯한 타민족, 타인종 간 화합이다.
흑인이 미국 땅에서 겪었던 차별의 역사,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주해온 한인들의 고초를 서로 알아야 한다.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알면 갈등과 오해가 생기더라도 문제를 풀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