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등 외국서 대부분 수입…6월께 나올 정보라 단편집이 첫 사례
콜롬비아서 한국책 잘나가지만…현지 출간은 사실상 '0건'
콜롬비아 보고타에 사는 밀드레 이스키에르도(31)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오후 2022 보고타국제도서전 한국관에서 열 권 넘는 책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박완서·한강의 소설부터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책까지 그가 집어든 책들은 다양했다.

그는 "영화 '올드보이'를 보고 몇 년 전부터 한국문화의 엄청난 팬이 됐다"며 "그동안 한국 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웹툰 이외에는 책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도서전이 기회라고 생각해 많이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를 가르치는 알바로 차우스트레(60)는 한국문화를 다룬 논픽션 책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는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알아가는 데 흥미를 갖고 있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역시 분단과 정치적 상황"이라며 "한국과 관련해 이렇게 큰 행사가 지금까지 없었는데 인터넷에서 보고 찾아왔다"고 전했다.

보고타국제도서전 주빈국관인 한국관을 찾은 콜롬비아 독자들은 교복을 맞춰입은 학생부터 출판 편집자, 의사, 대학교수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각자 다양한 경로로 한국에 대해 갖게 된 관심의 폭을 책으로 더 넓히고 싶다고 했다.

콜롬비아서 한국책 잘나가지만…현지 출간은 사실상 '0건'
관심의 시작은 역시 K팝을 필두로 한 문화 콘텐츠가 많았다.

전통음악 공연 같은 일부 문화행사는 작가 북토크보다 인기가 많아 공연 시작 전부터 관람객들이 줄을 길게 서기도 했다.

한국문화체험관을 운영하는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은 "한글 캘리그라피와 한글 이름쓰기 코너에 사람이 몰려 중복 참여하는 현지인들을 자제시키기도 했다"며 "멕시코에서 가져온 체험 관련 물품을 더 공수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현지 출판계도 한국문화에서 출발한 한국 책들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출판·유통그룹 시글로스의 에밀리아 프랑코 대표는 자사 부스에서 잘 나간다는 한국 책 몇 권을 꺼내들었다.

한병철의 철학책이 가장 많았고 이청준·김훈 등 유명 작가들의 소설도 있었다.

현지 저자가 한국전쟁을 주제로 쓴 책도 눈에 띄었다.

대형서점 체인 판아메리카나는 손원평의 소설과 류시화 에세이를 부스 입구에 전시해놓고 관람객을 맞았다.

콜롬비아서 한국책 잘나가지만…현지 출간은 사실상 '0건'
콜롬비아에서 한국 책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스페인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은 114종으로, 중국어나 독일어 번역본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다만 콜롬비아 출판계는 대부분 한국 책을 펭귄랜덤하우스 같은 글로벌 출판그룹이나 스페인·멕시코 등 주변국에서 수입해 들여오고 있어 현지 출판사가 시장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독일어로 글을 쓰는 한병철의 철학책은 스페인에서 유난한 인기가 도서 수입으로 콜롬비아까지 전해진 사례다.

출판사 베스티히오(Vestigio)가 오는 6∼7월께 출간 예정인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이 콜롬비아 로컬 출판사의 사실상 첫 한국 책 번역이다.

이민아 한국문학번역원 국제교류팀장은 "그린북 에이전시가 지난해 12월 판권 계약을 해서 출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콜롬비아 출판사가 한국문학 책을 출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화 저변이 확대됨에 따라 콜롬비아 출판사들도 출간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판타지를 중심으로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 작가들 책을 내는 출판사 칼릭스타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 작품 수입을 구상했다가 현실적 문제로 포기했다고 전했다.

이 회사 편집자인 루이스 엔리케 이스키에르도 레게스는 "번역료와 판권 같은 비용을 대사관 등 기관에서 지원해주면 출간을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