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 문살·희정당 샹들리에…창덕궁은 밤에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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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6월 12일까지 '달빛기행'…"왕이 된 마음으로 거닐어보길"
달밤의 고궁 산책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창경궁과 덕수궁은 문을 닫는 월요일을 제외하면 언제나 오후 9시까지 돌아볼 수 있고, 경복궁 야간 관람은 봄과 가을에 각각 한 달 넘게 진행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창덕궁은 '달빛기행'에 참가해야만 야경을 볼 수 있다.
해설사를 따라 창덕궁 주요 전각을 거닐고, 공연을 감상하는 달빛기행은 가장 인기 있는 궁궐 활용 행사로 꼽힌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창덕궁 달빛기행 재개에 앞서 지난 19일 사전 행사를 개최했다.
오후 7시 20분부터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25명씩 무리를 지어 궁궐 내부를 살폈다.
밤에 구경하기 힘든 창덕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낮과는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
해가 저물고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굳게 닫혀 있던 정문 돈화문이 활짝 열렸다.
해설사 성현희 씨는 돈화문 안쪽에서 금천교를 지나기 전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안내했다.
그는 "달빛기행은 일방통행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며 "넘어지지 않도록 발밑을 보며 걸어달라"고 했다.
"1405년 지어진 창덕궁은 역사가 600년이 넘습니다.
순종이 1926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100년 전까지만 해도 왕이 살았던 궁입니다.
달빛기행에서는 '내가 왕'이라고 생각하며, 임금의 시선을 떠올리며 거닐어 보세요.
" 창덕궁에서 으뜸이 되는 건물인 인정전을 가장 먼저 들렀다.
조명으로 환한 전각 내부를 보기 위해 조선시대 왕이 지나던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인정전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병풍이 있다.
해와 달, 다섯 개 봉우리, 소나무, 파도치는 물결이 화폭에 담겼다.
성씨는 "달 뜨는 시각은 매일 다르지만 일월오봉도에서는 항상 달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을 인정전 동쪽으로 이끈 성씨는 잠시 사진 찍을 시간을 줬다.
그는 특히 지붕을 보라고 했다.
땅거미가 깔린 밤하늘 덕분에 지붕의 곡선이 더욱 도드라졌다.
인정전 동쪽 희정당은 올해 달빛기행에서 처음으로 관람 동선에 포함됐다.
본래 임금이 휴식을 취하는 침전이었는데, 후대에는 접견실이나 집무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씨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이 기다린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뒤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옮겨 재건한 희정당에는 여러 서양식 건축 양식 요소가 도입됐다.
일례가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한 현관이다.
희정당 뒤쪽으로 이동하니 내부에 걸린 샹들리에가 보였다.
등갓에는 용이나 기쁠 희(喜) 자 문양이 있는데, 주문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음 전각은 헌종이 지은 낙선재. 일반적 궁궐 건물과 달리 단청이 없지만, 독특한 문양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성씨는 낙선재를 달빛기행의 백미로 꼽았는데, 문살을 관찰하니 그 이유를 알 듯했다.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격자형 무늬는 거의 없고, 추상화 같기도 한 다양한 무늬가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실내에 켜진 은은한 조명 때문에 문살 형태가 또렷하게 보였다.
성씨는 "헌종 때는 문살 종류가 20개는 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약 10종이 있다"며 "누마루 안에는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만월문이 있고, 건물 뒤쪽에는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한 문살이 많다"고 귀띔했다.
모란꽃이 핀 화계(花階·계단식 화단)를 통과해 낙선재 뒤에 솟은 언덕 상량정에 닿았다.
청아한 대금 연주를 들으며 서울타워와 도심 야경을 바라봤다.
상량정 옆에는 달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동그란 문이 있었다.
낙선재를 빠져나오면 후원 권역을 탐방하게 된다.
나무가 우거진 길은 어둑하고 고요했다.
이따금 새 소리가 들렸다.
후원에서는 규장각, 애련정, 연경당 권역을 거쳤다.
규장각과 애련정 권역에는 사각형 연못이 있는데, 잔잔한 수면 위에 조명을 받은 건물이 비쳤다.
거문고 연주와 전통 성악곡 가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람객이 적고 사방이 캄캄해서인지 더욱 운치가 있었다.
순조가 잔치를 베풀고자 1820년대에 조성한 건물인 연경당에서 음료를 마시며 박접무와 봄 산조춤을 감상하자 달빛기행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머그잔과 차가 선물로 제공됐다.
다시 돈화문으로 걸어가는 길 오른쪽으로 높은 현대식 건물이 보였다.
마치 선계(仙界)에서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시간 40분이 그다지 길지 않게 느껴졌다.
20년 넘게 궁궐 해설 봉사를 한 문화재전문위원 이향우 씨는 20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창덕궁 달빛기행의 매력으로 '실루엣'을 꼽았다.
인정전 지붕, 낙선재 문살, 부용지에 비친 규장각이 모두 실루엣에 해당한다.
그는 "창덕궁 달빛기행에 참가하면 어수선한 낮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비로소 보인다"고 강조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21일부터 6월 12일까지 목∼일요일에만 진행된다.
관람료는 3만원. 예매는 인터파크 티켓에서 할 수 있으나, 궁중문화축전 기간인 내달 12∼22일을 제외한 모든 티켓이 매진된 상태다.
축전 기간 관람권은 29일부터 판매된다.
/연합뉴스
창경궁과 덕수궁은 문을 닫는 월요일을 제외하면 언제나 오후 9시까지 돌아볼 수 있고, 경복궁 야간 관람은 봄과 가을에 각각 한 달 넘게 진행된다.
하지만 조선시대 궁궐 중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창덕궁은 '달빛기행'에 참가해야만 야경을 볼 수 있다.
해설사를 따라 창덕궁 주요 전각을 거닐고, 공연을 감상하는 달빛기행은 가장 인기 있는 궁궐 활용 행사로 꼽힌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창덕궁 달빛기행 재개에 앞서 지난 19일 사전 행사를 개최했다.
오후 7시 20분부터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25명씩 무리를 지어 궁궐 내부를 살폈다.
밤에 구경하기 힘든 창덕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낮과는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
해가 저물고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 굳게 닫혀 있던 정문 돈화문이 활짝 열렸다.
해설사 성현희 씨는 돈화문 안쪽에서 금천교를 지나기 전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안내했다.
그는 "달빛기행은 일방통행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며 "넘어지지 않도록 발밑을 보며 걸어달라"고 했다.
"1405년 지어진 창덕궁은 역사가 600년이 넘습니다.
순종이 1926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100년 전까지만 해도 왕이 살았던 궁입니다.
달빛기행에서는 '내가 왕'이라고 생각하며, 임금의 시선을 떠올리며 거닐어 보세요.
" 창덕궁에서 으뜸이 되는 건물인 인정전을 가장 먼저 들렀다.
조명으로 환한 전각 내부를 보기 위해 조선시대 왕이 지나던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인정전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인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병풍이 있다.
해와 달, 다섯 개 봉우리, 소나무, 파도치는 물결이 화폭에 담겼다.
성씨는 "달 뜨는 시각은 매일 다르지만 일월오봉도에서는 항상 달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을 인정전 동쪽으로 이끈 성씨는 잠시 사진 찍을 시간을 줬다.
그는 특히 지붕을 보라고 했다.
땅거미가 깔린 밤하늘 덕분에 지붕의 곡선이 더욱 도드라졌다.
인정전 동쪽 희정당은 올해 달빛기행에서 처음으로 관람 동선에 포함됐다.
본래 임금이 휴식을 취하는 침전이었는데, 후대에는 접견실이나 집무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씨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이 기다린다"며 기대감을 높였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뒤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옮겨 재건한 희정당에는 여러 서양식 건축 양식 요소가 도입됐다.
일례가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한 현관이다.
희정당 뒤쪽으로 이동하니 내부에 걸린 샹들리에가 보였다.
등갓에는 용이나 기쁠 희(喜) 자 문양이 있는데, 주문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음 전각은 헌종이 지은 낙선재. 일반적 궁궐 건물과 달리 단청이 없지만, 독특한 문양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성씨는 낙선재를 달빛기행의 백미로 꼽았는데, 문살을 관찰하니 그 이유를 알 듯했다.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격자형 무늬는 거의 없고, 추상화 같기도 한 다양한 무늬가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실내에 켜진 은은한 조명 때문에 문살 형태가 또렷하게 보였다.
성씨는 "헌종 때는 문살 종류가 20개는 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약 10종이 있다"며 "누마루 안에는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만월문이 있고, 건물 뒤쪽에는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한 문살이 많다"고 귀띔했다.
모란꽃이 핀 화계(花階·계단식 화단)를 통과해 낙선재 뒤에 솟은 언덕 상량정에 닿았다.
청아한 대금 연주를 들으며 서울타워와 도심 야경을 바라봤다.
상량정 옆에는 달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동그란 문이 있었다.
낙선재를 빠져나오면 후원 권역을 탐방하게 된다.
나무가 우거진 길은 어둑하고 고요했다.
이따금 새 소리가 들렸다.
후원에서는 규장각, 애련정, 연경당 권역을 거쳤다.
규장각과 애련정 권역에는 사각형 연못이 있는데, 잔잔한 수면 위에 조명을 받은 건물이 비쳤다.
거문고 연주와 전통 성악곡 가곡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람객이 적고 사방이 캄캄해서인지 더욱 운치가 있었다.
순조가 잔치를 베풀고자 1820년대에 조성한 건물인 연경당에서 음료를 마시며 박접무와 봄 산조춤을 감상하자 달빛기행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머그잔과 차가 선물로 제공됐다.
다시 돈화문으로 걸어가는 길 오른쪽으로 높은 현대식 건물이 보였다.
마치 선계(仙界)에서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시간 40분이 그다지 길지 않게 느껴졌다.
20년 넘게 궁궐 해설 봉사를 한 문화재전문위원 이향우 씨는 20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창덕궁 달빛기행의 매력으로 '실루엣'을 꼽았다.
인정전 지붕, 낙선재 문살, 부용지에 비친 규장각이 모두 실루엣에 해당한다.
그는 "창덕궁 달빛기행에 참가하면 어수선한 낮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비로소 보인다"고 강조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21일부터 6월 12일까지 목∼일요일에만 진행된다.
관람료는 3만원. 예매는 인터파크 티켓에서 할 수 있으나, 궁중문화축전 기간인 내달 12∼22일을 제외한 모든 티켓이 매진된 상태다.
축전 기간 관람권은 29일부터 판매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