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청소부이자 천연비료 생산 일꾼…"생태적 삶의 원형"

"볼일을 보다가 돼지가 뒤(?)를 핥는 바람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
[다시! 제주문화] (33)"똥돼지가 더럽다고?…다 이유가 있었네!"
제주에 사는 4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거나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할아버지·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볼일을 보기 두려워 발을 동동거렸던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이처럼 옛날 제주에는 집집마다 '돗통시'가 있었다.

'돗'은 돼지를, '통시'는 뒷간을 뜻하는 말로 돗통시는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겸한 공간이다.

제주 사람들은 돗통시에서 볼일을 보고 그 인분을 먹여 돼지를 키웠는데, 이러한 옛 풍습으로 인해 제주 돼지에 '똥돼지'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똥돼지'가 화장실 청소부이자 천연비료를 생산하는 유능한 일꾼이었던 사실은 점차 잊혀가고 있다.

◇ 천연비료를 생산하는 돗통시
제주에선 보통 하나의 돗통시에서 한두 마리의 돼지를 키웠다.

돗통시는 대략 10평(33㎡) 안팎의 비교적 넓은 크기를 자랑한다.

[다시! 제주문화] (33)"똥돼지가 더럽다고?…다 이유가 있었네!"
제주 지천으로 널린 돌을 쌓아 돌담을 두르고, 1평 남짓한 한쪽 귀퉁이는 띠(제주어로 '새')로 지붕을 덮어 '돗집'을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이 돗집에서 돼지가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잤다.

그 맞은편 구석 은밀한 곳에 넓적한 돌을 나란히 놓았는데, 이 돌을 제주말로 '디딜팡' 또는 '지들팡'이라고 했다.

사람이 디딜팡에 딛고 올라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면, 돼지는 냄새를 맡고 디딜팡 아래로 와 그것을 받아먹었다.

돼지는 단순히 인분만을 먹었던 것은 아니다.

주인이 '돗도고리'라고 하는 동그랗고 넓적한 먹이통에 먹다 남은 음식물쓰레기와 농업 부산물 등을 넣으면 돼지는 그것도 순식간에 처리했다.

돗집과 디딜팡, 돗도고리 등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돼지가 활동하는 공간이다.

놀랍게도 이곳에서 밭농사에 쓰이는 천연비료가 생산된다.

사람들은 돼지가 돌아다니는 곳에 수시로 보릿짚과 외양간의 퇴비, 심지어 쇠똥과 말똥 등을 넉넉하게 채워 넣었다.

[다시! 제주문화] (33)"똥돼지가 더럽다고?…다 이유가 있었네!"
돗통시 안에서 돼지들이 보릿짚과 자신의 배설물, 인분, 쇠똥, 말똥 등을 밟고 다니고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질 좋은 거름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바로 '돗거름'이다.

제주에서는 보리 파종 시기인 입동(立冬, 양력 11월 7일경) 전에 보리씨를 돗거름에 섞어 밭에 뿌렸다.

보리농사의 밑거름으로 쓰는 돗거름을 충분히 생산하기 위해서라도 돗통시는 다른 지역의 돼지우리에 비해 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인분 등을 거름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제주에서 돗통시를 통해 굳이 돗거름을 만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제주 민속학자 고광민 선생은 저서 '제주 생활사'(한그루, 2016)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한반도 사람들처럼 보리밭에 밑거름으로 쓰려고 구덩이를 파서 변소를 만들었다면, 액체 상태로 된 인분은 모두 땅속으로 스며들어버렸을 것"이라며 "제주도의 토양이 퍼석퍼석한 화산회토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인분은 돼지에게 먹이고, 돗통시라는 돼지우리에서 고체의 '돗거름'을 생산해 이용했던 것이다.

제주의 풍토와 농법에 맞는 거름 생산을 위한 돗통과 통시는 제주 사람들의 지혜이고 오랜 세월 이뤄진 제주도의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돌이 많고 척박한 제주의 자연환경에서 보리의 발아를 돕고 거름을 아끼면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한 방법이 바로 돗통시에서 생산된 돗거름인 셈이다.

[다시! 제주문화] (33)"똥돼지가 더럽다고?…다 이유가 있었네!"
◇ "부끄러운 문화 아닌 생태적 삶의 원형"
과거 제주에서 집집이 돼지를 키웠다면 그 수는 대략 어느 정도였을까.

정확한 통계를 찾을 수 없지만 '통시문화고:제주도 서민문화의 일단면'(정광중)과 '21세기에 다시 보는 제주도 돗통시 문화'(윤용택) 등 여러 논문을 통해 관련 내용을 엿볼 수 있다.

이들 논문에 따르면 1969년 제주도 내 전체 변소(5만4천916개)의 5만2천169개(95%)가 돗통시 구조를 하고 있었다.

또 1967∼1969년 3년간 돼지 사육 가구의 평균치를 보면 당시 1가구당 평균 사육 돼지 수가 1.4마리였다.

돼지는 농사를 지을 때나 집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제주에선 집마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인분과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할 뿐만 아니라 질 좋은 거름을 생산하고, 농경사회에서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까지 공급하는 음식 재료가 됐다.

하지만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형성되면서 환경이 조금씩 바뀌었다.

[다시! 제주문화] (33)"똥돼지가 더럽다고?…다 이유가 있었네!"
인분을 위생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수거식 또는 수세식 화장실로 바꾸는 변소개량 사업이 추진됐다.

도심에서는 돗통시가 자취를 거의 감췄지만, 나머지 농어촌 지역에서는 돗통시와 같은 재래식 화장실이 오랜 기간 여전히 남아있었다.

행정기관은 1980년대 들어 반강제적인 개량 사업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제주에서 개최될 예정인 1984년 전국소년체전 뿐만 아니라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굵직한 행사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됨에 따라 제주 관광객 유치에 '돗통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돗통시는 관광지인 제주의 미관을 해치고, 비위생적인 요물단지이자 버려야 할 부끄러운 풍습이 돼 버렸다.

결국 돗통시는 제주민속촌 등에서만 볼 수 있을 뿐 일반 가정에서는 사라졌다.

그 대가는 컸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 제주에서 생활하수는 하천과 바다로 흘러갔고, '돗거름'이라는 천연비료의 자리를 꿰찬 화학비료는 토양과 제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규모가 커진 양돈장에서 흘러나온 축산 분뇨 역시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그 일대 축산악취가 퍼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윤용택 제주대 교수는 과거 '21세기에 다시 보는 제주도 돗통시 문화' 논문을 통해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됐던 제주의 돗통시문화는 인간, 돼지(동물), 보리(식물), 세균(분해자)이 상생과 공생관계를 가능하게 해준다"며 "결코 부끄러운 문화유산이 아니라 환경과 생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생태적 삶의 원형"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제주문화] (33)"똥돼지가 더럽다고?…다 이유가 있었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