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가격이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4월 중순 들어 한때 기온이 초여름 수준으로 올라 수요가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선풍기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의 원재료인 구리와 알루미늄 가격이 치솟은 게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물류비 부담이 커진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선풍기 가격 더 오를 듯”

15일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올 들어 선풍기 가격은 지난해 여름 성수기보다 15~20% 인상됐다. S사의 스탠드 서큘레이터는 지난여름 13만9000원에서 올해 16만9000원으로 21.6% 올랐다.

기능 거품 뺀 '가성비 가전' 뜬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저소음 선풍기는 같은 기간 11만9000원에서 13만9000원으로 16.8% 인상됐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난 제품으로 입소문이 난 L사의 스탠드 선풍기도 5만8000원으로 지난해(4만9000원)에 비해 가격이 18.4% 높아졌다.

구리와 알루미늄 등 원재료 가격 급등이 선풍기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지난달 알루미늄 가격은 t당 3491달러(약 430만원)로 1년 전(2194달러·약 270만원)에 비해 59.1% 급등했다.

알루미늄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환경 보호를 이유로 생산량을 조절한 여파다. 세계 3위 알루미늄 생산국인 러시아에 경제 제재가 가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구리 선물 가격은 t당 1만375달러(약 1280만원)로 1년 만에 18.0% 뛰었다.

업계에선 본격적인 여름 성수기에 접어들면 선풍기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선풍기 구매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이달 1~12일 선풍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8.1%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여름 성수기에는 지난해에 비해 선풍기 가격이 30%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가격 거품 뺀 가전 인기

선풍기 가격의 ‘도미노 인상’은 시장 트렌드도 바꿨다. 과거에는 여러 최신 기능을 갖춘 프리미엄 제품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불필요한 기능을 빼고 본래 기능에 충실하면서 가격을 낮춘 ‘디버전스’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마트에서 팔고 있는 노브랜드 표준형 선풍기가 그런 사례다. 이 제품은 수면풍, 자연풍, 3차원(3D) 회전 등 프리미엄 제품에 들어가는 기능을 빼고, 풍향 조절과 타이머, 좌우회전 등 기본 기능만 넣었다.

대신 가격은 3만원대로 경쟁 제품의 절반 수준이다. 이 제품은 지난 1~12일 이마트 전체 선풍기 판매량의 34.2%를 차지하며 판매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판매량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다른 가전제품도 비슷한 추세다. 롯데하이마트가 선보인 ‘하이메이드 터치식 비데’는 자동 물내림, 탈취 등의 기능을 빼고 세정 본연의 기능에 집중한 대신 가격을 10만원대 아래로 낮춰 인기를 끌고 있다.

주방가전 시장의 거품도 빠지고 있다. 최근 전자레인지처럼 간편식을 조리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춘 프리미엄 밥솥이 등장했지만 롯데하이마트에서 인기가 높은 상위 5개 밥솥 모델은 모두 밥을 짓는 기본 기능에만 집중한 디버전스 제품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