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이 잇따라 정기 공채 제도를 폐지하고, 수시·경력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직무에 최적화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취지와 함께 ‘기수문화’에 기반한 공채문화 폐지를 통한 조직문화 개선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경제계에 따르면 올해 그룹 차원에서 공채하는 주요 대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현대자동차와 LG, SK그룹 등은 공채를 폐지하고, 계열사별 수시채용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기업들이 수시채용을 앞다퉈 도입하는 이유는 즉시 현업에 투입할 인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예전엔 정기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뽑은 뒤 최소 6개월간 교육해 현업에 투입했다”며 “경력자를 뽑으면 즉각 현업에 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채가 폐지되면서 과거 주요 기업을 대표한 ‘삼성맨’ ‘현대맨’ ‘LG맨’ 등의 용어도 사라지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주요 기업은 신입사원을 뽑은 뒤 한두 달간의 집합교육 및 대규모 단합대회를 통해 직원들의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력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경력 직원이 많지 않다 보니 기수문화가 일부 존재했다.

하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본격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조직문화도 달라졌다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MZ세대는 조직에 대한 애착이나 충성심보다는 능력에 따른 평가를 우선시한다”며 “기수문화는 설 자리를 완전히 잃었다”고 말했다. 경력사원들이 잇달아 입사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각 기업이 직급을 폐지하고 직원들의 호칭을 ‘님’이나 ‘프로’ 등으로 통일한 것도 기수문화가 사라진 또 다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한발 더 나아가 특정 직급에서 의무적으로 근속연수를 채워야 승진이 가능한 제도를 잇따라 폐지하고 있다. 선배를 뛰어넘고 먼저 승진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뜻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공채 중심 문화가 순혈주의를 불러온 면이 적지 않다”며 “공채 폐지가 순혈주의 문화 타파를 더욱 앞당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