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상 후보 정보라 "위대한 의도 없었고 나오는 대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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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감정 비현실적 이야기로 표현"…차기작은 해양수산물 시리즈
번역 안톤 허 "한강 작가 에이전트가 축하"…'붉은칼' 등 2편도 영국 출간
"쓸 때는 나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썼어요.
위대한 의도를 가진 게 아닌데…."
소설집 '저주토끼'로 세계 최고 권위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 6편에 뽑힌 정보라(46) 작가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부커재단의 호평에 감사하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런 관심은 처음"이라고 쑥스러워한 그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소탈한 답변으로 웃음 짓게 했다.
창작자가 된 계기는 "학교 문학상에서 당선되면 100만 원을 준다고 해서", 작품 속 여성주의적 시각에는 "제가 여성이니…"라고 덤덤하게 답했다.
한국 작가로는 한강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쾌거는 문학계 파란이었다.
국내에서도 이렇다 할 수상 경력 없이 무명에 가까운 정 작가 작품을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기 때문이다.
'저주토끼' 판권 판매는 기존 7개국에서 최종후보 지명 이후 15개국으로 늘었다.
이 책을 영어로 옮겨 함께 후보에 오른 한국인 번역가 안톤 허(본명 허정범·41)도 이날 간담회에 함께했다.
그는 "우리나라 장르 문학의 문학성에 대한 증거인 것 같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또 "한강 작가님의 영국 에이전트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와 '두 작가가 부커상 후보에 올라 뿌듯하다'고 말씀하셨다더라"는 소식도 전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길에 들어선 이유를 "문학이 재미있어서"라고 꼽았다.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 속 10편은 과학소설(SF)과 환상문학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판타지, 공포, 초현실적 요소가 뒤섞였다.
일상의 이야기 같지만 기괴한 발상이 돌출하며 기묘하게 전개된다.
공포와 유머, 아이러니가 섞인 문체도 독특하다.
저주 토끼가 아이의 뇌를 갉아먹고(표제작), 배설물과 오물로 빚어진 피조물이 변기 안에서 튀어나온다('머리'). '몸하다'에선 피임약을 복용하던 여성이 아버지 없이 임신하고, '흉터' 속 납치된 소년의 성장기는 가혹하고 폭력적이다.
정 작가는 "귀여운 토끼를 무섭게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머리'를 읽고서) 화장실에 가기 무섭다거나, 변비가 생긴 모든 분께 죄송하다"며 웃었다.
그는 "좋아하는 일상의 장면이나 사물, 인물에서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며 "인물인 경우 정황을 글로 쓰면 상처가 될 수 있어서 이야기는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만들려 한다.
가능하면 현실 상황의 논리와 반대 방향으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자유로움과 환상성은 그의 이력에서 영향을 받았다.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한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지역학 석사를 받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문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슬라브 문학의 자유로움, 환상성에 영향을 받았다"며 "1920년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소설을 전공했는데 혁명 직후여서 예술 실험이 허용되고 국가적으로 장려되던 시기였다.
스탈린주의 혁명 직후부터 10년간은 예술 등이 자유롭게 꽃 피던 시기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저주와 복수마저 통쾌하지 않다.
씁쓸하고 쓸쓸한 여운이 있다.
정 작가는 "불의나 부정을 저주해 나쁜 사람이 망했다고 해서 생존자가 그때 겪은 감정을 잊고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상은 어느 정도 불의하고 부조리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톤 허 번역가는 정 작가의 문학성에 반해 이 책을 해외에 소개했다.
그는 "문체의 전달력, 아이러니, 상상력이 정보라의 문학성"이라며 "읽자마자 영미권에서 통할 것 같았다.
변기에서 머리가 나오는데 누가 그런 얘기를 싫어하겠는가.
이 책의 판권을 산 영국 혼포드스타가 크게 될 책이라며 '누가 낚아챌 수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작가님 문장에는 아름다우면서 공포스럽고 유머러스한 정서가 깃들어 있다.
상반된 정서의 결합은 영어로 번역하기 더 쉽다.
꿈같은 번역이었다.
죽을 때까지 정 작가님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고 웃었다.
"(부커상) 수상은 예측할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좋아할 겁니다.
"
가장 번역에 공들인 대목으로는 '몸하다'의 '진통의 파도에 실려 하얀 천장에 둥실 떠올랐다가~'란 단락을 꼽았다.
"아이 출산 과정이 두렵고 힘든데 꿈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퇴고를 거쳐 번역에 도달하고 소리를 질렀죠."
두 사람은 앞으로도 호흡을 맞춘다.
지난달 혼포드스타는 정 작가의 장편 '붉은 칼'(2019, 아작)과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2021, 아작)의 영국판 출판 계약을 맺기로 했다.
역시 안톤 허 번역가가 영어로 옮겨 1년 뒤 선보일 예정이다.
정 작가는 차기작도 준비 중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전쟁 이야기를 쓰진 않을까.
그는 "소수자의 고통과 상실 등 쓰고 싶은 게 많다"면서도 뜻밖에 "해양수산물 시리즈를 쓰고 있다"고 했다.
"포항 남자를 만나 재작년에 포항으로 시집을 갔어요.
제사상에 저만한 문어가 오르는 게 충격적이었죠. 문어는 썼고 상어, 멸치, 김 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예정입니다.
"
그러면서 그는 "세상에 분쟁 지역이 26곳이라고 한다"며 "고통과 상실은 널려있지만 당장 소설로 나오진 못할 것 같다.
시간을 보내며 생각해보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지 숙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그는 6월 여성주의 소설집 '여자들의 왕'(가제)과 8월 환상공포 경장편 '호'(가제)를 잇달아 출간할 예정이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 중단편선, 세계 SF 고전 오마주 소설집, 청소년 소설집 등 5월 출간될 여러 앤솔러지(선집)에도 작품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번역 안톤 허 "한강 작가 에이전트가 축하"…'붉은칼' 등 2편도 영국 출간

위대한 의도를 가진 게 아닌데…."
소설집 '저주토끼'로 세계 최고 권위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 6편에 뽑힌 정보라(46) 작가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부커재단의 호평에 감사하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런 관심은 처음"이라고 쑥스러워한 그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소탈한 답변으로 웃음 짓게 했다.
창작자가 된 계기는 "학교 문학상에서 당선되면 100만 원을 준다고 해서", 작품 속 여성주의적 시각에는 "제가 여성이니…"라고 덤덤하게 답했다.
한국 작가로는 한강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쾌거는 문학계 파란이었다.
국내에서도 이렇다 할 수상 경력 없이 무명에 가까운 정 작가 작품을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기 때문이다.
'저주토끼' 판권 판매는 기존 7개국에서 최종후보 지명 이후 15개국으로 늘었다.
이 책을 영어로 옮겨 함께 후보에 오른 한국인 번역가 안톤 허(본명 허정범·41)도 이날 간담회에 함께했다.
그는 "우리나라 장르 문학의 문학성에 대한 증거인 것 같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또 "한강 작가님의 영국 에이전트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와 '두 작가가 부커상 후보에 올라 뿌듯하다'고 말씀하셨다더라"는 소식도 전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길에 들어선 이유를 "문학이 재미있어서"라고 꼽았다.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 속 10편은 과학소설(SF)과 환상문학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판타지, 공포, 초현실적 요소가 뒤섞였다.
일상의 이야기 같지만 기괴한 발상이 돌출하며 기묘하게 전개된다.
공포와 유머, 아이러니가 섞인 문체도 독특하다.
저주 토끼가 아이의 뇌를 갉아먹고(표제작), 배설물과 오물로 빚어진 피조물이 변기 안에서 튀어나온다('머리'). '몸하다'에선 피임약을 복용하던 여성이 아버지 없이 임신하고, '흉터' 속 납치된 소년의 성장기는 가혹하고 폭력적이다.
정 작가는 "귀여운 토끼를 무섭게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머리'를 읽고서) 화장실에 가기 무섭다거나, 변비가 생긴 모든 분께 죄송하다"며 웃었다.
그는 "좋아하는 일상의 장면이나 사물, 인물에서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며 "인물인 경우 정황을 글로 쓰면 상처가 될 수 있어서 이야기는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만들려 한다.
가능하면 현실 상황의 논리와 반대 방향으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한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지역학 석사를 받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문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슬라브 문학의 자유로움, 환상성에 영향을 받았다"며 "1920년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소설을 전공했는데 혁명 직후여서 예술 실험이 허용되고 국가적으로 장려되던 시기였다.
스탈린주의 혁명 직후부터 10년간은 예술 등이 자유롭게 꽃 피던 시기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저주와 복수마저 통쾌하지 않다.
씁쓸하고 쓸쓸한 여운이 있다.
정 작가는 "불의나 부정을 저주해 나쁜 사람이 망했다고 해서 생존자가 그때 겪은 감정을 잊고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상은 어느 정도 불의하고 부조리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톤 허 번역가는 정 작가의 문학성에 반해 이 책을 해외에 소개했다.
그는 "문체의 전달력, 아이러니, 상상력이 정보라의 문학성"이라며 "읽자마자 영미권에서 통할 것 같았다.
변기에서 머리가 나오는데 누가 그런 얘기를 싫어하겠는가.
이 책의 판권을 산 영국 혼포드스타가 크게 될 책이라며 '누가 낚아챌 수 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작가님 문장에는 아름다우면서 공포스럽고 유머러스한 정서가 깃들어 있다.
상반된 정서의 결합은 영어로 번역하기 더 쉽다.
꿈같은 번역이었다.
죽을 때까지 정 작가님 작품을 번역하고 싶다"고 웃었다.
"(부커상) 수상은 예측할 수 없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좋아할 겁니다.
"
가장 번역에 공들인 대목으로는 '몸하다'의 '진통의 파도에 실려 하얀 천장에 둥실 떠올랐다가~'란 단락을 꼽았다.
"아이 출산 과정이 두렵고 힘든데 꿈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퇴고를 거쳐 번역에 도달하고 소리를 질렀죠."
두 사람은 앞으로도 호흡을 맞춘다.
지난달 혼포드스타는 정 작가의 장편 '붉은 칼'(2019, 아작)과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2021, 아작)의 영국판 출판 계약을 맺기로 했다.
역시 안톤 허 번역가가 영어로 옮겨 1년 뒤 선보일 예정이다.
정 작가는 차기작도 준비 중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전쟁 이야기를 쓰진 않을까.
그는 "소수자의 고통과 상실 등 쓰고 싶은 게 많다"면서도 뜻밖에 "해양수산물 시리즈를 쓰고 있다"고 했다.
"포항 남자를 만나 재작년에 포항으로 시집을 갔어요.
제사상에 저만한 문어가 오르는 게 충격적이었죠. 문어는 썼고 상어, 멸치, 김 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예정입니다.
"
그러면서 그는 "세상에 분쟁 지역이 26곳이라고 한다"며 "고통과 상실은 널려있지만 당장 소설로 나오진 못할 것 같다.
시간을 보내며 생각해보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지 숙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그는 6월 여성주의 소설집 '여자들의 왕'(가제)과 8월 환상공포 경장편 '호'(가제)를 잇달아 출간할 예정이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 중단편선, 세계 SF 고전 오마주 소설집, 청소년 소설집 등 5월 출간될 여러 앤솔러지(선집)에도 작품을 선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