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선배-검사 출신' 권영세가 통일부장관 맡은 이유는?
"MB정부 초기 일부 인사가 통일부 업무를 ‘인수분해’해보니 각 부처에 다 나눠줄 수 있고 따라서 통일부는 폐지가 마땅하다는 말을 해서 경악을 했는데 다시 통일부 무용론이 나오니 당혹스럽다(2021년 7월 10일 권영세 통일부장관 후보자 페이스북)"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윤석열 정부의 통일정책을 이끌 수장으로 낙점됐다. 4선 중진 의원이자 윤석열 당선인의 최측근인 권 의원이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되자 정치권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 초기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며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통일부 장관이라는 의외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실제 권 후보자와 인수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윤 당선인이 권 후보자에게 통일부를 맡긴 것은 '통일 정책 새 판 짜기'라는 중책을 맡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장, 주중대사 등을 역임해 동북아 정세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동시에 통일 문제에 관심이 큰 권 후보자가 그 적임자라는 평가다.

독일 통일에 큰 관심…북한·중국통이기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두번째)와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왼쪽 세번째) 등 당 지도부가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현 전 원내대표, 이 대표, 권 부위원장, 정진석 국회부의장.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 두번째)와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왼쪽 세번째) 등 당 지도부가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현 전 원내대표, 이 대표, 권 부위원장, 정진석 국회부의장. 뉴스1
지난해 7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통일부 설전'은 통일 문제에 대한 권 후보자의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당시 이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남북관계는 통일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관리했다. 그 다음에 통일부 장관은 항상 기억에 안 남는 행보를 했다”며 “그래서 여가부나 통일부는 좀 없애자”고 주장했다.

권 후보자는 다음날 "통일부는 존치돼야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 정부(문재인 정부) 통일부가 한심한 일만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없애는 건 아니다"며 "우리가 집권해서 제대로 하면 된다. 검찰이 마음에 안든다고 ‘검수완박’ 하는 저들을 따라해서야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같은 권 후보자의 의견은 통일 문제에 대한 오랜 관심에서 비롯됐다. 그는 국민의힘 내에서도 통일 문제를 잘 아는 인사로 꼽힌다. 검사 시절에는 독일 연방법무부 통일국에 파견됐다. 이 때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권 후보자는 2010년 책 '서독 기민·기사당의 동방정책'을 번역했다. 2018년에는 언론에 '권영세의 독일 통일 이야기'라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권 후보자가 북한·중국 등 동북아 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는 2010년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아 2년 가까이 활동했다. 정보위원장 및 위원들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북한 관련 보고를 정기적으로 받는 만큼 북한의 생리를 잘 알 수밖에 없다. 권 후보자는 박근혜 정보 국정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주중대사를 역임했다. 중국은 북한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국을 잘 아는 인사'가 북한을 잘 아는 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정책 '새판짜기' 중책 맡아

권영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이 유영하 변호사와 함께 12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 회동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회동에 배석한 권 부위원장은 윤 당선인의 서울대 법대 2년 선배로 당선인의 의중을 이해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뉴스1
권영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이 유영하 변호사와 함께 12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 회동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회동에 배석한 권 부위원장은 윤 당선인의 서울대 법대 2년 선배로 당선인의 의중을 이해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뉴스1
권 후보자는 '통일정책 새판 짜기'라는 중책을 맡았다. 당권 도전으로 마음을 굳혔던 그가 통일부 장관직을 수락한 것 역시 이같은 윤 당선인의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권 후보자는 13일 인사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의 정상적이고 순조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당에 있는 게 좋지 않았나 했는데 당선인 생각은 달랐나 보다"고 밝혔다. 그는 인수위가 끝나면 당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전해왔다. 지난 9일까지만 해도 "국회로 돌아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겠다"며 입각설에 선을 그었다.

당선인 측은 인사 발표 직전까지 권 후보자를 간곡히 설득했다. 윤 당선인이 그리는 '신통일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힘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인수위 일각에서는 당선인이 이전 정책과는 완전히 다른 통일 정책을 설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나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모두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만큼 '윤석열 통일정책'을 새로 그려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4선 중진 의원이자 윤석열 선거대책본부장,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은 권 후보자가 적임이라는 논리다. 권 후보자에게 대북정책을 맡긴 것은 그만큼 당선인이 통일 문제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신호로도 풀이된다.

권 후보자가 통일부 장관직을 맡게 된 데는 인수위 내부 정치가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들의 견제로 인해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권 후보자가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급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