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강풍 등에 진화 난항…"팔십 평생 처음" 주민들 아연실색
50대 주민이 산 근처서 무심코 낙엽 태우다 '화르르'…또 인재
강원 동해안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화마(火魔)가 또다시 강원도를 덮쳤다.

자영업을 하는 50대 주민이 무심코 저지른 낙엽 소각의 불씨는 산으로 옮겨붙어 축구장 면적(0.714㏊) 1천8배에 달하는 산림 720㏊(720만㎡)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다행히 인명·시설 피해는 없었으나 짙은 연무와 강풍, 동시다발적인 산불 등으로 인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은 발생 사흘 만인 12일에서야 꺼졌다.

산림 당국은 주불진화는 마쳤으나 현장에 헬기를 넉넉히 두고 잔불진화와 뒷불감시에 돌입했다.

◇ 진화 발목 잡은 연무·강풍·동시다발 산불
이번 산불은 지난 10일 오후 3시 40분께 양구읍 송청리 야산에서 시작됐다.

불은 죽곡리, 황강리, 송우리, 청리, 용하리, 야촌리, 가오작리 등 사방으로 번졌다.

야간으로 접어들면서 불길은 황강리 황강마을과 청리 전원마을 인근까지 드리웠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를 보유한 송청리 심곡사와 봉안사 근처까지 불길이 확산했으나 진화대원들 덕에 피해는 없었다.

산림 당국은 이튿날인 11일 오전 6시께 일출과 동시에 헬기를 투입하려 했으나 짙은 연무가 끼면서 정오가 가까운 시각에서야 헬기를 차례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전에는 잠잠했던 바람이 오후 들어 순간 초속 10m로 강하게 불면서 불길이 확산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이북 지역, 고성·인제·연천 등 비무장지대(DMZ)와 경북 군위, 강원 정선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한 탓에 헬기를 충분히 투입하지 못한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결국 주불진화는 '41시간 20분' 만인 이날 오전 9시께 완료됐다.

◇ 주민들 공포로 몰아넣은 개청 이래 최대 산불
6·25 전쟁 이후 수복지역인 양구는 군청 개청 이래 가장 큰 산불이 난 것으로 주민들은 밤새 아연실색했다.

송청리 심곡사 근처에 사는 한 주민은 "불 머리가 밤새 드나들면서 집을 집어삼킬 듯 위협해 한숨 못 잤다"며 "팔십 평생 양구에서 이렇게 큰 산불은 처음"이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특히 산불이 양구읍과 국토정중앙면 가오작리를 연결하는 도로를 뛰어넘어 확산하면서 산불 진화 현장에는 한때 긴장감이 돌았다.

산불이 그대로 북상하면 대암산으로 번지고 인근 DMZ(비무장지대)와 북쪽으로도 확산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산불 지역과 대암산과는 20㎞가량 떨어져 있지만, 산불이 한 시간에 4∼5㎞씩 북상하던 점을 고려하면 산불 진행 방향 앞에 놓인 대암산은 풍전등화 상황이었다.

조인묵 양구군수는 "양구 역사 이래 가장 큰 산불이 발생했지만, 민가 주변에 미리 물을 뿌리는 등 신속히 대처해 인명 피해 등은 막았다"며 "밤사이 불 머리를 잡지 못했으면 대암산과 DMZ 방면으로 번질 수도 있어 아찔했다"고 말했다.

◇ 불 난리 초래한 낙엽 소각…대형산불 또 '인재'
사흘간 양구 산림을 초토화한 이번 산불은 '낙엽 소각'으로 말미암은 인재(人災)였다.

경찰 등에 따르면 불은 50대 자영업자 A씨가 낙엽을 태우다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강풍에 낙엽이 곳곳에서 날아들자 이를 모아 소각통 등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라이터를 이용해 낙엽 더미에 불을 붙였다가 산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보호법상 실수로라도 산불을 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고의로 산불을 냈을 때는 최대 15년 이하의 중형까지 받을 수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2∼2021년)간 평균 산불 원인은 입산자 실화 160.6건, 쓰레기 소각 63.7건, 담뱃불 실화 25.9건이다.

이로 인해 연평균 560㏊(560만㎡)에 달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되고 있다.

올해도 이날 현재까지 입산자 실화로 인한 산불 73건에 산림 897㏊가 소실됐고, 쓰레기 소각이 원인이 된 산불 42건이 발생해 산림 73㏊가 탔다.

담뱃불로 인한 산불도 24건이 발생해 산림 7.7㏊를 잃었다.

◇ 꺼진 불씨도 다시 보자…잔불 진화·뒷불감시 체제 전환
주불진화는 마쳤으나 피해구역이 넓어 숨은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림 당국은 현장에 헬기 12대와 야간 열화상 드론 3대를 대기시키고, 산불전문진화대원과 감시원 등을 배치해 잔불진화와 뒷불감시를 이어갈 계획이다.

산림청에서는 산림 분야 조사·복구 추진단을 꾸려 산림피해조사와 산사태 등 2차 피해방지를 위한 응급복구, 경제림 조림 및 산림생태계 복원계획을 수립한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번 산불로 양구 주민들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신속한 복구를 통해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고, 예전보다 더 푸르고 울창한 산림으로 되돌리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든 대형산불이 발생할 수 있으니 국민 여러분께서도 산불 예방·감시·신고에 협조를 부탁드린다"며 "향후 대응에 있어서 산림청은 산불의 신속한 진화체계 구축과 함께 예방대책도 강화해나가며, 특히 산불 방화·실화자에 대해 엄중히 처벌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