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적자국채 발행 없이 35조원 규모 이상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할 것을 재정당국에 주문했다. 대규모 적자 국채를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 물가 등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재원을 총동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인수위 “적자국채 발행 없다” 배수진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7일 “인수위가 예산 지출 구조조정과 여유 자금 등으로 적자국채 발행 없이 추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기획재정부와 구체적인 방안을 짜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 세부적인 추경안을 마련하면 당과 협의할 수 있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인수위 "적자국채 없는 '35조+α' 추경안 짜라"…기재부는 '난색'
인수위는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적자국채 발행, 예산 지출 구조조정, 기금 여유 자금 등을 종합 검토한 뒤 추경 방향성을 결정하겠다”(추경호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적자국채 발행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강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인플레이션으로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 돈이 갑자기 풀리면 금리 인상 효과가 사라져 금리를 또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예정에 없던 물가대책회의를 열고 “물가를 포함한 민생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도 허리띠 졸라매야

인수위는 기재부에 크게 세 가지 추경 편성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한국은행 결산 잉여금, 공공자금관리기금 여유 자금, 세수 재추계 등을 통해 추경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다음은 새 정부 국정 과제와 맞지 않는 사업은 축소 또는 연기하는 예산 지출 구조조정이다. 인수위는 기재부 측에 “전례없는 위기 상황에선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정부 예산에서 의무 지출을 제외한 약 300조원의 정부 재량 지출 사업비를 평균 10%(30조원)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는 올해 불용 예산이 발생한 부처에는 내년도 예산 편성 때 불이익을 준다는 방침이다.

적자국채는 발행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는 범위 안에서 발행하기로 했다. 2021회계연도 세계잉여금 중 부채 상환에 쓰인 자금은 다시 국채를 통해 조달하더라도 시장에 주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게 인수위 판단이다. 공적자금 상환(2조원)과 국채 상환(1조4000억원) 자금 등이 이런 범주에 해당한다.

적자국채를 발행할지 여부는 전체 추경 규모와 관련이 있다. 인수위는 올해 초 17조원 규모 1차 추경 등을 고려, 이번 추경 규모를 35조원 안팎으로 잡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른 추가 방역 예산에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인한 물가 급등과 이에 따른 민생 대책 등에 필요한 예산이 늘어날 수 있어 추경 규모는 더 불어날 수 있다.

머리 싸매는 기재부

기재부에선 적자국채 발행 없이 35조원 안팎의 재원을 조달하기 쉽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해 남은 23조원의 세계잉여금 중 추경 재원으로 쓸 수 있는 여유 자금은 6조3000억원 정도, 한국은행 결산 잉여금 등을 더해도 정부 내 여유 자금은 최대 8조원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예산 지출 구조조정에 대해선 기재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 총 규모가 10조원 이내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이라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수위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즉시 추경안을 집행할 수 있도록 기재부와 협의해 이달 말 세부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청와대 이전 공약도 실현하는 마당에 소상공인 손실보상과 같은 민생 공약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게 당선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좌동욱/도병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