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국책연구원의 평가 주기를 1년에서 3년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내건 명분은 ‘연구기관의 독립성’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연구 주제와 방향이 급격하게 변경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밖으로 드러난 취지만 놓고 보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문제는 시점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현 정부에서 임명된 국책연구원장 자리를 보장해주려는 시도가 과연 순수한 의도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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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주요 국책연구원장 자리에는 청와대 출신 인사 다수가 포진해 있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을 거친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장, 경제수석을 지낸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 중소벤처비서관으로 일한 주현 산업연구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 출신 이태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등도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꼽힌다. 이들이 계속 원장직을 유지하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에 불리하거나 새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발표된 2020년 연구기관 성과 평가 자료를 보면 정부의 국정과제를 얼마나 성실히 수행했는지가 성과 평가의 주요 항목 중 하나다. 이 때문에 국책연구원장들은 국정과제 연구에 적극적이다. 국토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 과거 이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연구기관이 전체 평가에서도 대체로 높은 등급을 받았다. 성과 평가 주기가 3년으로 바뀌면 국책연구원장들이 국정과제를 소홀히 해도 별 부담이 없다.

3년 임기 중 중간평가가 없어지면 국책연구원장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연구소 관계자는 “연구 독립성을 위해 임기를 보장하더라도 평가는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원을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온 문재인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성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비판도 있다. 실제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원자력발전소의 발전 단가를 부풀려 원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연구자료를 발표해 학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국토연구원은 서울 강남 집값이 오른 이유는 언론 보도 탓이라는 취지의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는 입맛에 맞지 않는 연구에는 연구비를 거의 지원하지 않았다”며 “외부에서 펀딩을 받거나 개인적으로 연구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연구 독립성을 중시한다는 문재인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국책연구원장을 대거 교체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재선임된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장, 고용노동부 장관 출신의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지낸 현정택 대외경제연구원장 등이 임기 6개월~1년6개월을 남기고 사표를 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