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산불 한달] ① 검게 변한 산, 방치된 밭…생동감 잃은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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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마을회관 등에 이재민 머물러…"논밭 있으면 뭐해 농사 지을 수 없는데"
경북도·울진군 마련 임시주거시설 입주 시작
[※편집자 주 = 3월 4∼13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과 동해에서 발생한 '동해안 산불'이 213시간43분 만에 진화되면서 역대 최장기간 산불로 기록됐습니다.
또 산림청 공식 집계로 산림 2만523㏊가 불에 타는 등 큰 피해가 발생,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돼 피해조사와 복구가 진행 중입니다.
연합뉴스는 산불 발생 1개월째 정부 피해 조사 등을 토대로 피해 규모와 복구계획, 대형 산불 원인과 대응체계 문제점, 대책 등을 짚어 보는 기획 9편을 송고합니다] 지난달 30일 동해안을 따라 놓인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 경북 울진군 울진읍에 이르자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포항이나 영덕만 해도 산과 들 곳곳에 꽃이 피고 나무에 물이 올라 생동감이 넘쳤다.
그러나 울진에 이르자 갑자기 불에 탄 새카만 나무와 누른 잎이 달린 소나무가 보였다.
죽변면과 북면까지 이어진 국도 옆 곳곳에도 불에 타 검게 그을리거나 녹은 표지판, 교통시설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난달 4일부터 13일까지 213시간 이어진 울진·삼척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울진에는 산불 흔적이 역력했다.
나무가 탄 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에 흩어지거나 빗물에 쓸려 많이 사라졌지만 불에 탄 나무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불길이 지나간 나무는 누렇게 변해 고사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날 울진군 북면 덕구리 덕구온천호텔에서 만난 이재민 얼굴에도 그늘이 짙었다.
울진에서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은 327가구 466명이다.
이 가운데 집이 모두 파손된 주민은 248가구다.
이재민들은 덕구온천호텔을 비롯해 마을회관, 친척 집 등에 머물고 있다.
경북도와 울진군은 마을별로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해 지난달 29일부터 이재민이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북면 신화2리에 15개동, 소곡리 9개동, 고목리에 5개동을 설치했고 계속 마을별로 임시주거시설을 만들고 있다.
덕구온천호텔에 머물던 이재민도 일부 임시주거시설로 이주하면서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55가구 83명이 남아 있었다.
대통령선거일이었던 지난달 9일부터 이곳에 머물러 온 이재민들은 잠자리와 식사가 해결돼 당장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옷이나 각종 생필품도 전국 각지에서 보내줬다.
그러나 집이 모두 탄 만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주민(81)은 "소곡리 집에 가봤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무서웠다"며 "여기서 아무리 편하게 있어도 내 집보다 나을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같은 마을에 산다는 다른 주민(67)도 "여기 있으니 밥도 잘 나오고 크게 불편한 것은 없지만 당장 집 지을 형편이 안 되니 임시주거시설에라도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호텔 앞에는 농협 산하 농가주부모임 경북도연합회가 운영하는 이동빨래차가 서 있었다.
회원들은 지난달 10일부터 이재민 옷을 세탁해주는 봉사활동을 해 왔다.
이날 만난 한 회원은 "지금까지는 도내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봉사했는데 이제 곧 마무리할 예정이고 우리 다음에는 울진의 봉사단체가 이동빨래차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덕구온천호텔 주차장에 서 있자 어디선가 탄 냄새가 났다.
냄새를 따라 가보니 바로 뒷산까지 닥친 산불로 나무가 타고 남은 재에서 난 것이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탄 냄새가 가시지 않아 산불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덕구1리 쪽으로 가자 불에 탄 집 두 채가 눈에 띄었다.
주인2리에도 탄 집이 방치돼 있었고 소곡1리 곳곳에도 불에 타 내려앉은 집이 보였다.
소곡1리 마을회관 앞에는 임시주거시설 9개동이 놓여 있었다.
이 마을에서 집을 잃은 이재민 가운데 9가구가 29일 입주했다.
한 이재민 안내로 둘러본 임시주거시설에는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탁 등이 있었다.
여러 단체에서 준 쌀과 김치 등도 있어 당장 먹고사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고 했다.
이 이재민은 근처 한 곳을 가리키며 "바로 저기에 집이 있었는데 홀라당 다 탔다"며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임시주거시설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는 봄을 맞아 씨를 뿌리거나 논·밭을 갈아 농사지을 준비를 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울진 산불 피해지역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상당수 논·밭은 여전히 3월 초 산불 나기 전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한 표고버섯 농장은 불길이 휩쓸고 가면서 비닐하우스가 탔고 표고버섯 종균이 접종된 나무도 타 버린채 방치돼 있었다.
울진에서 산불이 난 지난달 4일만 해도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이어서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이날은 아침 최저기온이 8.7도, 낮 최고기온이 16.7도까지 올라 외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봄 기운이 완연했다.
그러나 많은 이재민들은 봄을 느낄 여력이 없다고 했다.
산불에 집을 잃은 한 이재민은 "논·밭이 있으면 뭘 하느냐"며 "집이 이 모양이고 농기계나 농자재가 다 탔는데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고 힘없이 말했다.
/연합뉴스
경북도·울진군 마련 임시주거시설 입주 시작
[※편집자 주 = 3월 4∼13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과 동해에서 발생한 '동해안 산불'이 213시간43분 만에 진화되면서 역대 최장기간 산불로 기록됐습니다.
또 산림청 공식 집계로 산림 2만523㏊가 불에 타는 등 큰 피해가 발생, 특별 재난지역으로 선포돼 피해조사와 복구가 진행 중입니다.
연합뉴스는 산불 발생 1개월째 정부 피해 조사 등을 토대로 피해 규모와 복구계획, 대형 산불 원인과 대응체계 문제점, 대책 등을 짚어 보는 기획 9편을 송고합니다] 지난달 30일 동해안을 따라 놓인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 경북 울진군 울진읍에 이르자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포항이나 영덕만 해도 산과 들 곳곳에 꽃이 피고 나무에 물이 올라 생동감이 넘쳤다.
그러나 울진에 이르자 갑자기 불에 탄 새카만 나무와 누른 잎이 달린 소나무가 보였다.
죽변면과 북면까지 이어진 국도 옆 곳곳에도 불에 타 검게 그을리거나 녹은 표지판, 교통시설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지난달 4일부터 13일까지 213시간 이어진 울진·삼척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울진에는 산불 흔적이 역력했다.
나무가 탄 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에 흩어지거나 빗물에 쓸려 많이 사라졌지만 불에 탄 나무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불길이 지나간 나무는 누렇게 변해 고사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날 울진군 북면 덕구리 덕구온천호텔에서 만난 이재민 얼굴에도 그늘이 짙었다.
울진에서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은 327가구 466명이다.
이 가운데 집이 모두 파손된 주민은 248가구다.
이재민들은 덕구온천호텔을 비롯해 마을회관, 친척 집 등에 머물고 있다.
경북도와 울진군은 마을별로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해 지난달 29일부터 이재민이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북면 신화2리에 15개동, 소곡리 9개동, 고목리에 5개동을 설치했고 계속 마을별로 임시주거시설을 만들고 있다.
덕구온천호텔에 머물던 이재민도 일부 임시주거시설로 이주하면서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55가구 83명이 남아 있었다.
대통령선거일이었던 지난달 9일부터 이곳에 머물러 온 이재민들은 잠자리와 식사가 해결돼 당장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옷이나 각종 생필품도 전국 각지에서 보내줬다.
그러나 집이 모두 탄 만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주민(81)은 "소곡리 집에 가봤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무서웠다"며 "여기서 아무리 편하게 있어도 내 집보다 나을 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같은 마을에 산다는 다른 주민(67)도 "여기 있으니 밥도 잘 나오고 크게 불편한 것은 없지만 당장 집 지을 형편이 안 되니 임시주거시설에라도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호텔 앞에는 농협 산하 농가주부모임 경북도연합회가 운영하는 이동빨래차가 서 있었다.
회원들은 지난달 10일부터 이재민 옷을 세탁해주는 봉사활동을 해 왔다.
이날 만난 한 회원은 "지금까지는 도내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봉사했는데 이제 곧 마무리할 예정이고 우리 다음에는 울진의 봉사단체가 이동빨래차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덕구온천호텔 주차장에 서 있자 어디선가 탄 냄새가 났다.
냄새를 따라 가보니 바로 뒷산까지 닥친 산불로 나무가 타고 남은 재에서 난 것이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탄 냄새가 가시지 않아 산불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덕구1리 쪽으로 가자 불에 탄 집 두 채가 눈에 띄었다.
주인2리에도 탄 집이 방치돼 있었고 소곡1리 곳곳에도 불에 타 내려앉은 집이 보였다.
소곡1리 마을회관 앞에는 임시주거시설 9개동이 놓여 있었다.
이 마을에서 집을 잃은 이재민 가운데 9가구가 29일 입주했다.
한 이재민 안내로 둘러본 임시주거시설에는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탁 등이 있었다.
여러 단체에서 준 쌀과 김치 등도 있어 당장 먹고사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고 했다.
이 이재민은 근처 한 곳을 가리키며 "바로 저기에 집이 있었는데 홀라당 다 탔다"며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임시주거시설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는 봄을 맞아 씨를 뿌리거나 논·밭을 갈아 농사지을 준비를 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울진 산불 피해지역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상당수 논·밭은 여전히 3월 초 산불 나기 전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한 표고버섯 농장은 불길이 휩쓸고 가면서 비닐하우스가 탔고 표고버섯 종균이 접종된 나무도 타 버린채 방치돼 있었다.
울진에서 산불이 난 지난달 4일만 해도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이어서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이날은 아침 최저기온이 8.7도, 낮 최고기온이 16.7도까지 올라 외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봄 기운이 완연했다.
그러나 많은 이재민들은 봄을 느낄 여력이 없다고 했다.
산불에 집을 잃은 한 이재민은 "논·밭이 있으면 뭘 하느냐"며 "집이 이 모양이고 농기계나 농자재가 다 탔는데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고 힘없이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