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대통령직 인수위에 방안 보고…두 기관 갈등 표면화 조짐
공정위, 검찰에 중요 업무 뺏길까 우려…'단절된 소통 복원부터' 지적도
공정위 특사경 도입, 실현가능성엔 물음표…범칙조사권 대안될까
법무부가 공정거래위원회에 검찰의 지휘를 받는 특별사법경찰관리(특사경)를 도입하는 방안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하면서, 검찰과 공정위 간 업무 영역을 둘러싼 오래된 갈등이 다시금 표면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경쟁법적 요소를 따져 법 위반 여부를 가려야 하는 공정거래사건 특성상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는 특사경을 도입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일본처럼 범칙조사 절차를 도입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 '검찰 지휘' 특사경에 커지는 우려…전문가들도 부정적
3일 인수위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업무보고에서 공정거래 관련 공약 이행 계획으로 공정위에 특사경을 도입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특사경은 전문 분야 수사를 위해 행정공무원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이때 모든 수사는 검사의 지휘를 받게 된다.

관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법무부가 이 같은 방안을 들고나온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선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전속고발권 때문에 발생하는 공정위의 늑장 고발, 공소시효 도과(경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공정위의 행정조사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을 경우 형사 재판에서 수집된 증거의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점도 줄곧 제기돼 온 문제다.

공정위는 법무부의 보고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며 공식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새 정부에서 채택될 경우 중요 업무 상당수가 검찰에 넘어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

이근우 가천대 법대 교수는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자료에서 "공정위가 특사경의 지위가 되는 순간 (공정위의 조사는) 독자적으로 절차를 설정할 수 있었던 행정조사가 아니라 수사지휘권에 따라 형사소송법에 의해 엄격한 통제를 받는 수사 절차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수사의 종결권한은 검사가 보유하게 되는데, 공정위는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다수가 경쟁제한성 등 다양한 경쟁법적 요건을 따져봐야 하는 공정거래 사건 특성을 고려할 때 특사경 도입이 쉽지 않다고 본다.

법조계의 한 전문가는 "특사경은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므로 공정거래법 집행을 형사처벌 중심으로 하겠다는 얘기가 된다"며 "형벌의 보충성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40여년간 행정집행 중심으로 움직여온 전통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택수 계명대 교수는 2013년 형사법연구에 실은 논문에서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근거로 행정기관이 사법기능을 담당하는 검사의 통제를 받게 돼 전속고발제도가 왜곡된다"며 특사경과 전속고발권이 병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사경 도입으로 수사권 오·남용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어 윤석열 당선인의 '친기업' 기조와도 정면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 특사경 도입, 실현가능성엔 물음표…범칙조사권 대안될까
◇ 대안으로 떠오르는 범칙조사…"카르텔은 적용 가능" 주장도
이 때문에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일본 공정취인위원회의 범칙조사절차다.

일본 공정취인위원회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기능을 한다.

법원의 허가 등 일정한 조건 아래 공취위가 강제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범칙조사절차의 핵심이다.

2005년 일본 공취위는 행정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자료의 절차상 위헌 논란을 없애고, 검찰 조사나 형사재판에서 공취위의 조사자료 활용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범칙조사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국세청이 범칙조사절차를 활용해 탈세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검찰 내 대표적 공정거래법 전문가인 구상엽 울산지검 인권보호관은 2019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공정위의 행정조사 대상 중 형사집행과 연계될 가능성이 많은 카르텔 분야를 범칙조사절차 도입이 가능한 분야로 꼽았다.

그러면서 "범칙조사절차를 개시했다고 무조건 검찰 고발에 이르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범칙조사자료는 행정조사와 처분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일본에서처럼 공정위와 검찰의 교류 및 협력이 긴밀히 강화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헌법에서 규정한 영장주의에 따라 공정위의 범칙조사 공무원이 압수수색 영장 등을 신청하려면 검사를 통할 수밖에 없어 일정 부분 검찰 지휘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 역시 공정위로선 달가운 카드는 아니다.

공정거래 사건과 달리 조세포탈 혐의는 법 위반 판단 기준이 비교적 명확한 만큼 국세청의 범칙조사 절차를 공정위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위 특사경 도입, 실현가능성엔 물음표…범칙조사권 대안될까
◇ 공정위·검찰 협의기구 유명무실화…"두 기관 관계 정립부터"
법·제도를 고치기에는 검찰과 공정위 입장차가 단기간에 좁혀지기가 쉽지 않은 만큼 두 기관이 단절된 소통부터 복원해 합리적인 법 집행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랜 기간 전속고발권 폐지를 두고 힘겨루기를 해온 두 기관은 2018년 공정위 간부들의 불법 취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현재는 사실상 관계가 단절된 상태다.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상호 정보를 교환하고 검찰의 수사 착수에 필요한 고발조치 여부를 사전 협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5년부터 양 기관이 운영해온 공정거래사범협의회도 최근 5년 가까이 공식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법 한 전문가는 "두 기관의 관계 정립부터 해야 한다"며 "특사경이니 범칙조사니 하는 차원이 아니라 더 큰 관점에서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위한 공정거래집행 시스템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