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호 교수 '호, 주인옹의 이름' 발간…"인격 은폐한 필명과 달라"
옛사람이 중시한 또 다른 이름 '호'는 어떻게 지었나
조선 후기 학자 정약용(1762∼1836)은 '다산'(茶山)이라는 호(號)로 유명하다.

다산은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 초당 인근의 차밭이 있던 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정약용은 다산 외에도 여유병옹(與猶病翁),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철마산인(鐵馬山人) 등 많은 호를 사용했다.

서재 이름에서 비롯한 여유당(與猶堂), 순종이 1910년 하사한 문도(文度)도 정약용의 호다.

호는 본명이나 자(字) 외에 쓰는 이름이다.

자는 본명을 소중히 여기던 시절에 사용한 또 다른 이름으로, 성년식인 관례를 치른 뒤 받았다.

호는 주어진 이름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본명이나 자와는 달랐다.

한문학자인 심경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이 펴낸 신간 '호, 주인옹의 이름'에서 옛사람들이 호를 보유한 이유와 짓는 방법, 호에 의미를 부여한 방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사람의 여러 이름과 호칭, 호를 짓는 심리와 호의 기능, 호에 관한 글인 호설(號說), 신분 계층과 호 등 호를 다양한 주제로 다뤘다.

저자는 호를 문필(文筆·글을 짓거나 글씨를 씀) 생활과 일상 교유에서 개인을 지시하는 이름으로 정의한다.

호를 짓는 관습은 중국 당나라 때 생겼다고 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그는 "지난 시대에는 이름과는 다른 호칭으로서 집단 내에서 의미가 환기되는 호를 중시했다"며 "어떤 사람은 인생 전환기에 심적 상태를 다잡고 타자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고 호를 바꿨다"고 설명한다.

호에 사용된 한자는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은 방위, 계절, 식물, 동물과 관련된 글자였다.

예컨대 김정희의 호인 '추사'(秋史)와 강위의 호인 '추금'(秋琴)에서 '추'(秋)는 가을을 의미한다.

고전에 등장하는 어휘나 성리학자를 숭배하는 글자도 호에 쓰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호도 있었다.

저자는 "호는 남이 지어주기도 했지만, 자신이 지은 자호(自號)도 많았다"며 "남의 호를 지을 때는 대개 좋은 글자를 붙였으나, 자신의 호를 정할 때는 겸양의 뜻을 나타내려고 어리석을 우(愚)나 노둔할 노(魯), 졸렬할 졸(拙)을 쓰기도 했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보기에 호는 '또 다른 나'로 깨어나도록 돕는 이름이었다.

그는 책 제목에도 들어간 단어인 '주인옹'(主人翁)과 호를 연결해 논한다.

"호는 주체의 재생과 부활의 특별한 기호였다.

중세에는 마음을 '주인옹'이라고 불렀다.

몸뚱이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주인공이란 말의 어원이다.

자신을 불러 깨우는 일은 삶의 경건성을 유지하는 주요한 방법이었다.

호는 바로 환성(喚醒·사람을 깨우침)의 기표였다.

"
조선시대 문필가의 호는 현대에 작가가 본명 대신 쓰는 필명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에서 필명은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 과정에서 형성됐다"며 "필명은 호와 달리 개방성이 없고, 자기 성찰의 기제로 활용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결론에서 "호를 지닌다는 것, 호로 불린다는 것은 호에 표명된 가치나 이념을 실현하겠다는 다짐을 촉구한다"며 특정 인물이 호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했을 때 호는 '주인옹의 본명'이 아닌 '페르소나의 허명'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520쪽. 5만3천원.
옛사람이 중시한 또 다른 이름 '호'는 어떻게 지었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