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이식되는 도시의 유전자…파레틴 오렌리 개인전
영상에서 거대한 비행선 같은 물체가 런던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을 거쳐 서울로 향한다.

큰 원형 몸통에 달린 꼬리가 헤엄치듯 쉴새 없이 움직이는 물체는 정자(精子)다.

화면에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당인리 발전소와 한강, 높은 빌딩들이 보이고, 상공에서 정자가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진다.

파레틴 오렌리(53)는 작품 속 정자처럼 세계 곳곳을 떠돌며 작업해온 작가다.

터키에서 태어나 네덜란드로 이주한 그는 암스테르담, 이스탄불,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질적 문화의 교차점, 경계 등이 작업의 주요 주제다.

특히 그는 자본과 도시, 인간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탐구하고, 이를 작품으로 시각화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에서 25일 개막한 개인전 '도시 유전자 → 버블 인 더 마인드'에 출품한 신작 영상 '도시 유전자'는 도시와 자본이 어떤 식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며, 한 도시의 정보와 지식이 어떻게 다른 도시로 퍼져나가고, 그곳의 인간에게 이식되는지 다룬다.

정자는 세계 자본의 흐름과 이를 둘러싼 가부장적 연대를 은유한다.

작가는 도시를 인간과 같은 하나의 유기적 생물로 바라본다.

이를 바탕으로 각 도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인간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지 관찰하고 예술적 언어로 재구성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었지만, 도시가 다시 인간에게, 다른 도시에 영향을 미친다"며 "영국 런던으로 대표되는 서구적인 시스템이 세계를 휩쓸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서울은 2004년 이후 자주 방문했다"며 "처음에는 1년마다 크게 바뀌더니 이후 6개월, 3개월마다 달라졌다.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바닥에는 대형 흰색 막대풍선 모양의 설치 작품 '마음속의 거품 → 내 안에, 도시 안에 ← 암호화폐'가 놓였다.

팬데믹과 경제적인 이유, 도시가 주는 압박감 등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스스로 소외되고 질식해가는 상황을 빗댄 작품이다.

이밖에 도시와 인간이 뒤섞인 제3의 존재를 그린 드로잉 연작 '유기적 도시들'도 볼 수 있다.

4월 24일까지.
인간에 이식되는 도시의 유전자…파레틴 오렌리 개인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