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재한 우크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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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연락 끊길까 전전긍긍…단체 대화방서 고국 소식 공유
시위·예배 등 연대 움직임 이어져…러 대사관 앞서 한 달간 집회 "어제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할머니 걱정에 다섯 살, 일곱 살인 두 아들이 울더라고요.
매년 여름마다 고국에 놀러 갔었는데, 이젠 '우리가 돌아갈 나라가 있느냐'고 묻는 거 있죠……."
우크라이나에서 10년 전 한국으로 건너와 대학원을 졸업한 직장인 줄리아 스물리악(34) 씨는 25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어머니가 우크라이나 중부 소도시 '크리프이 리'에 계시는데, 피난 열차표를 사려다가 사람이 너무 몰려 결국 사지 못했다"고 급박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러시아의 침공 뒤 현지인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자국 소식을 접하고 큰 불안에 떨고 있다.
가족들과 가능한 대로 연락하며 안전을 확인하면서도 언제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상황이다.
◇ 가족 안위 걱정에 전전긍긍…단톡방 모여 소식 공유
한국 생활이 6년째인 직장인 줄리엣 곤차렌코(28) 씨는 "오늘 오전 5시쯤 부모님이 폭발음을 듣고 놀라 깨셨다더라. 러시아의 공격으로 공항이 파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키예프에서 서쪽으로 약 120㎞ 떨어진 지토미르에 산다는 곤차렌코씨는 "사람들이 겁에 질린 채 식료품을 사려 모여들고 있고, 기름을 사려는 줄도 길게 늘어섰다"고 전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외교학 박사과정생인 알리나 쉬만스카(30) 씨도 고국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부모님과 여동생, 외할아버지·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러시아와 가까운 동부 지역의 '수미'시에 사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러시아군의 폭격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쉬만스카씨는 "원래 두 분 몸이 불편하신데, 폭격 이후 요양보호사도 방문하지 못해 아무것도 못 드신 채 병상에 누워만 있다고 들었다"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연락이 잘 됐는데,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라 너무 걱정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서부 지역 지토미르에 사는 부모님과 여동생과는 연락이 되고 있다고 했다.
결혼하고 한국으로 온 지 4년가량 지난 직장인 김드미트로(22) 씨는 전날 고국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가 됐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가족 중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에 남아 계시는 아버지와 어제 통화할 때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며 "아버지는 침공이 벌어진 곳과 살짝 떨어진 자포로지예 지역에 살아 아직은 안전한 것 같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짐을 싸 둔 상태"라고 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2018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다는 폴리나 말체바(26)씨는 "가족들이 러시아 국경 근처 하르키우(러시아명 하리코프)에서 불과 30㎞ 정도 떨어진 곳에 산다"며 "아직 내 고향은 폭격을 받지 않았지만 하르키우나 주변 도시들은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어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대피소 등으로 숨고 있다"고 전했다.
말체바씨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사실상 전쟁을 벌여왔지만, 지금이 가장 무섭다"면서도 "하지만 국가와 군을 믿는다"고 했다.
국내에 머무는 우크라이나인 3천500명 중 일부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여 침공 상황을 담은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 등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기준으로 약 130명이 방에 참여하고 있다.
◇ 집회·예배로 국내서도 속속 연대…"한국 지지 부탁"
국내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의 조기 종식과 평화를 촉구하는 연대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활빈단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단체 홍정식 단장은 "국제사회가 나서 평화적 해결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내에 머무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집단행동에 나선다.
이들은 27일부터 한 달간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찰은 집회 첫날 50명가량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도 열린다.
마포구 아현동 한국정교회 성니콜라스대성당에서는 26일 정오부터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를 비롯한 공관원과 교민 등 20여명이 모여 예배와 기도를 할 예정이다.
국제적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뜻에서 #StandWithUkriane(우크라이나인과 함께합니다)이라는 세계인들의 해시태그가 속속 게시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의 공격에 굳건히 맞서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며 한국인들에게도 지지를 호소했다.
스물리악씨는 "한국 정부가 러시아와의 무역을 제재하는 등 강력한 대응에 나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기 위한 집회를 계획 중이라는 박사과정생 쉬만스카씨도 "우크라이나 주변 국가, 아니 세계가 우리를 포기한 느낌이라 슬프다.
한국을 포함한 민주진영 국가들이 우리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체바씨도 "한국 정부도 러시아의 끔찍한 만행에 맞서 대러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앞서 러시아는 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수도 키예프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도 러시아의 미사일 등 공격이 동시다발로 이뤄지며 군·민간 사상자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임성호 송은경 김치연 윤우성 기자)
/연합뉴스
시위·예배 등 연대 움직임 이어져…러 대사관 앞서 한 달간 집회 "어제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할머니 걱정에 다섯 살, 일곱 살인 두 아들이 울더라고요.
매년 여름마다 고국에 놀러 갔었는데, 이젠 '우리가 돌아갈 나라가 있느냐'고 묻는 거 있죠……."
우크라이나에서 10년 전 한국으로 건너와 대학원을 졸업한 직장인 줄리아 스물리악(34) 씨는 25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어머니가 우크라이나 중부 소도시 '크리프이 리'에 계시는데, 피난 열차표를 사려다가 사람이 너무 몰려 결국 사지 못했다"고 급박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러시아의 침공 뒤 현지인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자국 소식을 접하고 큰 불안에 떨고 있다.
가족들과 가능한 대로 연락하며 안전을 확인하면서도 언제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상황이다.
◇ 가족 안위 걱정에 전전긍긍…단톡방 모여 소식 공유
한국 생활이 6년째인 직장인 줄리엣 곤차렌코(28) 씨는 "오늘 오전 5시쯤 부모님이 폭발음을 듣고 놀라 깨셨다더라. 러시아의 공격으로 공항이 파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키예프에서 서쪽으로 약 120㎞ 떨어진 지토미르에 산다는 곤차렌코씨는 "사람들이 겁에 질린 채 식료품을 사려 모여들고 있고, 기름을 사려는 줄도 길게 늘어섰다"고 전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외교학 박사과정생인 알리나 쉬만스카(30) 씨도 고국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부모님과 여동생, 외할아버지·외할머니를 떠올리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러시아와 가까운 동부 지역의 '수미'시에 사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러시아군의 폭격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쉬만스카씨는 "원래 두 분 몸이 불편하신데, 폭격 이후 요양보호사도 방문하지 못해 아무것도 못 드신 채 병상에 누워만 있다고 들었다"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연락이 잘 됐는데,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라 너무 걱정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서부 지역 지토미르에 사는 부모님과 여동생과는 연락이 되고 있다고 했다.
결혼하고 한국으로 온 지 4년가량 지난 직장인 김드미트로(22) 씨는 전날 고국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가 됐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가족 중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에 남아 계시는 아버지와 어제 통화할 때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며 "아버지는 침공이 벌어진 곳과 살짝 떨어진 자포로지예 지역에 살아 아직은 안전한 것 같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짐을 싸 둔 상태"라고 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2018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다는 폴리나 말체바(26)씨는 "가족들이 러시아 국경 근처 하르키우(러시아명 하리코프)에서 불과 30㎞ 정도 떨어진 곳에 산다"며 "아직 내 고향은 폭격을 받지 않았지만 하르키우나 주변 도시들은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어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대피소 등으로 숨고 있다"고 전했다.
말체바씨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사실상 전쟁을 벌여왔지만, 지금이 가장 무섭다"면서도 "하지만 국가와 군을 믿는다"고 했다.
국내에 머무는 우크라이나인 3천500명 중 일부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모여 침공 상황을 담은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 등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기준으로 약 130명이 방에 참여하고 있다.
◇ 집회·예배로 국내서도 속속 연대…"한국 지지 부탁"
국내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의 조기 종식과 평화를 촉구하는 연대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단체 활빈단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 단체 홍정식 단장은 "국제사회가 나서 평화적 해결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내에 머무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집단행동에 나선다.
이들은 27일부터 한 달간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침공에 항의하는 의미로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경찰은 집회 첫날 50명가량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도 열린다.
마포구 아현동 한국정교회 성니콜라스대성당에서는 26일 정오부터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를 비롯한 공관원과 교민 등 20여명이 모여 예배와 기도를 할 예정이다.
국제적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뜻에서 #StandWithUkriane(우크라이나인과 함께합니다)이라는 세계인들의 해시태그가 속속 게시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의 공격에 굳건히 맞서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며 한국인들에게도 지지를 호소했다.
스물리악씨는 "한국 정부가 러시아와의 무역을 제재하는 등 강력한 대응에 나서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기 위한 집회를 계획 중이라는 박사과정생 쉬만스카씨도 "우크라이나 주변 국가, 아니 세계가 우리를 포기한 느낌이라 슬프다.
한국을 포함한 민주진영 국가들이 우리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체바씨도 "한국 정부도 러시아의 끔찍한 만행에 맞서 대러 제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앞서 러시아는 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수도 키예프 등 주요 도시 곳곳에서도 러시아의 미사일 등 공격이 동시다발로 이뤄지며 군·민간 사상자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임성호 송은경 김치연 윤우성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