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은 가정하지 않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1%로 높인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한은 전망치는 2%대 중후반이었던 시장 추정을 훌쩍 넘어섰다. 전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고려하면 올해 소비자물가가 3%대 중반까지 치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깊어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경제성장률을 갉아 먹을 변수로도 작용한다. 치솟는 물가와 흔들리는 성장률을 놓고 통화당국이 ‘금리조정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물가 11년 만에 최고치

한은은 이날 발표한 2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소비자물가를 종전 2.0%에서 3.1%로 1.1%포인트나 끌어올렸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현실화하면 지난해(2.5%)보다 0.6%포인트 높다. 연간 기준으로는 2011년(4.0%) 후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1.7%에서 2.0%로 역시 상향 조정했다.

이주열 "우크라 확전 땐 인플레 압력 더 세져"…금리인상 속도 내나
한은 전망대로면 소비자물가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 연속 한은의 물가 목표치(2.0%)를 넘어선다. 이 총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위험과 경기 회복 등으로 국제 유가 상승세가 예상보다 커진 점 등을 고려해 물가상승률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물가 전망치를 산출하면서 올해 원유 도입 원가를 배럴당 85달러로 전제했다. 작년(70달러)보다 15달러 높인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면 국제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봤다.

뜀박질하는 국제 유가는 국내 물가에도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1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2015년=100)는 114.24로 전달 대비 0.9% 올랐다. 국제 유가 흐름에 민감한 전력·가스·수도·폐기물 물가는 2.4%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률은 2009년 7월(4.7%) 이후 12년6개월 만의 최고치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비롯한 정부의 씀씀이가 커지는 것도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총재도 “재정 확대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건 아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금리 두세 번 더 올릴 듯”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3.0%)는 바꾸지 않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높은 긴장이 지속된다는 전제로 산출한 전망치다. 하지만 전면전 양상은 가정하지 않았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은 성장률을 갉아 먹는 요인이지만 수출 증대와 추경 편성, 소비 회복 가능성은 성장률을 밀어 올릴 요인”이라며 “이들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장률을 3%로 유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은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나빠지면 성장률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기업 비용이 불어나고, 그만큼 영업이익률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의 10대 교역국인 러시아가 강도 높은 제재를 받으면 수출 지표도 나빠진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려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성장률 하락 압력도 커지는 만큼 인상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은 종합적 경제·금융 상황을 고려할 때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뜻을 고수했다. 이 총재는 “성장 흐름이 예상대로 이어지면 물가 오름세도 높기 때문에 지속해서 금리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금통위원 다수의 의견”이라며 “기준금리를 연 1.5%로 한 차례 더 올려도 긴축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 기준금리가 연 2.0%까지 뛸 수 있다고 봤다. 금통위원을 지낸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당폭 치솟는 등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생각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며 “물가 수준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올해 두세 차례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